[노벨문학상 산책]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

  • 윤일환 한양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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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0   |  발행일 2022-06-10 제21면   |  수정 2022-06-10 07:00
초자연적 치유의 공간 갈망…이니스프리 향한 짝사랑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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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1865 ~ 1939년)의 작품과 생애는 블루베리의 과육과 껍질처럼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예이츠의 생애는 고기압과 저기압의 부딪힘에서 그 힘을 얻는 태풍마냥, '초월적 상승'과 '지상에 뿌리박기'라는 강력한 두 경향성의 맞부딪힘으로 가득하다. 그는 초월적 존재들과 영적 교류를 시도함으로써 시공을 뛰어넘는 초월적 상징체계를 구축하려는가 하면, 아일랜드의 전통과 역사적 현재와 영웅들의 행적을 꼼꼼히 담아내려 한다.

예이츠의 초월적 성향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예이츠가 어린 시절과 학교 방학의 대부분을 조부모와 함께 지냈던 슬라이고 지방은 신화와 민담과 전설이 가득했던 곳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들 이야기를 접하면서 초월세계가 단순히 상상이 아니라 실재하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청년 예이츠는 과학과 현실을 초월하여 심령의 세계로 들어가 신과 우주의 신비를 표현하는 것에 매료된다. 1885년 그는 조지 윌리엄 러셀, 찰스 존스턴과 함께 '더블린 신지회'를 설립하여, 태고 이후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둘러싼 비밀의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고 다시 근원적인 신적 예지에 접근하기를 희망한다.


신화·민담 가득한 슬라이고 지방서 어린시절…신·우주의 신비에 매료
생활 터전인 도시 떠나지 못한채 이니스프리 섬으로 떠나는 날 염원
작은 오두막 짓고 명상하며 생활…꿈꾸던 소박한 삶 하나하나 나열
아침 안개 '면사포'·한밤중 '타는 보랏빛' 등 몽환적 시적 표현 '백미'



1889년 1월 예이츠는 민족주의 독립투사인 미모의 여배우 모드 곤을 만난다. 예이츠는 그녀를 만난 이래 10여 년을 줄곧 구혼하고 수많은 시를 바쳤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에게 모드 곤은 열렬한 숭배의 대상, 아일랜드 민족운동의 동지, 불멸의 뮤즈이지만, 또한 희망 없는 사랑으로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모순의 존재이다. 예이츠가 최소 네 차례 청혼을 하지만 모두 거절한 모드 곤은 1903년 아일랜드 독립투사인 존 맥브라이드 소령과 결혼한다. 이 결혼은 예이츠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예이츠는 민족주의자로서 문학과 예술을 통해 아일랜드를 통합하고 계층과 종교와 종족 간의 연대를 고취하려 한다. 이 일환으로 그는 레이디 그레고리, 더글라스 하이드, 조지 무어, 조지 러셀 등과 함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을 시작한다. 이들 작가는 아일랜드의 독립에 이바지하기 위해 민중에게 아일랜드의 소중한 자산을 계몽하고 아일랜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또한 가톨릭 소작 농민의 삶 속에 신화, 전설, 민담을 문학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통합을 가져오려 한다. 한편 1910년과 1920년대는 아일랜드가 영국 제국주의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탈식민의 빛으로 나오는 때이다. 1916년 부활절 봉기와 1919년에 시작되어 2년 동안 지속된 영국-아일랜드 전쟁을 치른다. 1921년 1월 아일랜드의회가 논란 끝에 단 7표 차로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인준함으로써 마침내 아일랜드자유국이 탄생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자유국에서 상원으로 6년을 봉사한다. 1923년 예이츠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1937년, 이미 일흔두 살이 된 예이츠는 호흡과 보행이 곤란할 정도로 노쇠했다. 그는 요양차 남부 프랑스로 떠난다. 이듬해인 1938년 겨울 그의 병세는 악화된다. 멀리 고향인 더블린을 그리워하며 예이츠는 1939년 1월28일 숨을 거둔다. 예이츠는 1938년 9월에 탈고한 작품 '불벤 산 아래'에서 자기의 영면(永眠)의 장소와 비문을 손수 지정한 바 있다. 비문에는 "차가운 눈길을,/ 삶과 죽음 위에 던지며,/ 지나가라, 말탄 자여!"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삶과 죽음, 지상과 초월을 모두 포괄하려는 예이츠의 열망을 깊은 여운으로 남겨놓는다.

예이츠는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내 자신의 음악적 리듬으로 쓴 첫 서정시"라고 설명하면서 이니스프리가 힘든 순간마다 제자리를 찾게 해주는 사색과 치유의 공간이라고 토로한다. 이 서정시에서 시인은 도시의 문명 생활, 소음, 군중으로부터 벗어나 이니스프리의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평화와 지혜를 얻고자 염원한다. 이 염원은 물욕과 인습으로부터 탈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시는 이니스프리로 떠나고 싶다는 소망으로 시작된다. "나는 일어나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흙과 욋가지로 조그마한 오두막 짓고,/ 아홉이랑 콩을 심고 꿀벌 통은 하나,/ 숲 가운데 빈터에 벌 잉잉거리는 곳, 나 홀로 게서 살리라." 시인은 자연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이니스프리에 도착했을 때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한다. 그는 '흙과 욋가지'로 은신처인 조그마한 오두막 짓고 '아홉이랑 콩'을 심을 것이다. 또한 벌집 한 통을 마련하여 꿀을 딸 것이다. 시인은 탈문명의 불편함을 손수 행하는 고된 노동으로 채우고 소박하고 명상적인 생활을 해나갈 것이다.

2연은 시인이 꿈꾸는 평화를 아름다운 자연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거기서는 나도 얼마쯤 평화를 가지리, 평화는 천천히 흘러내려,/ 아침 면사포에서 귀뚤개미 우는 데로 흘러내리나니./ 거긴 한밤중에도 환한 미광, 한낮엔 타는 보랏빛,/ 해질녘엔 가득한 홍방울새 나래 소리." 평화는 참을성 있게 노동을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적 삶을 추구할 때 서서히 내려온다. 그곳에서 누릴 평화는 여러 얼굴이다. 아침 안개에 가려 어렴풋이 드러냈던 평화는 한나절 타는 보랏빛으로 바뀌더니 황혼녘에 홍방울새의 날갯짓마냥 솟아올라 찬란한 영적인 위엄을 드러낸다. 아침 안개가 종교 의식에서 쓰는 '면사포'에 비유되어 영적인 의미가 환기된다. 또한 '한밤중에도 환한 미광'이나 '타는 보랏빛'은 이 평화가 지닌 몽환적이고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현실로 되돌아온다. "나는 일어나 이제 가리라. 언제나 밤낮으로/ 내 귀에 들리나니, 그 호수의 언덕에 나직이 철썩거리는 물소리,/ 차로에서나 회색 인도에 서있을 제,/ 내 맘의 깊은 곳에 들려오나니." 이니스프리의 호수 물소리는 시인을 밤낮으로 부르며 손짓한다. "가리라"는 말을 반복하며 굳건한 의지를 강조하지만 시인은 무감각하고 병들고 우울한 도시의 회색 인도를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그곳은 황량하지만 생활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도시에서 머물며 밤낮으로 이니스프리를 그리워한다. 그의 갈망은 좀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과 같다. 하지만 짝사랑의 마법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호수의 물소리가 맘 깊은 곳에서 철썩이며 귓전에 맴돌 것이기에.

윤일환 교수 (한양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윤일환_사진
윤일환 교수 (한양대 영어영문학과)

윤일환 교수는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문학읽기' '현대영미역사와시,' 대학원에서 '19세기 영미시 세미나' '20세기 영미시 세미나' 등을 강의하고 있다.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에 나타난 억압적인 미적-도덕적 규율의 해체, 메시아적인 정의 및 욕망의 흐름의 재형상화 등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부학장, 영어영문학과 학과장, 하버드 엔칭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또 한국예이츠학회 회장과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교양으로 읽는) 영미문학'(공저), '예이츠, 아일랜드, 그리고 문학: 이니스프리에서 델피까지'(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번역, 권력, 전복'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크리스타벨과 타자의 애도 윤리학' '예이츠의 사랑의 시: 잃은 여인과 얻은 시' '자본주의, 정의, 그리고 욕망-생산-데리다와 들뢰즈, 그리고 마르크스의 유산'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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