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 명작] - 아서 코난 도일의 '네 사람의 서명' - 셜록 홈즈는 명탐정?

  • 허정애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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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03   |  발행일 2021-09-03 제21면   |  수정 2022-02-22 08:15
19세기 인도항쟁 일어나 영국의 지배력 흔들리던 시기
자국민 불안·공포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슈퍼명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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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해결사인 셜록 홈즈는 영국의 천재적인 명탐정으로 세계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의 모든 작품에 묘사된 셜록 홈즈의 모습을 종합해보면 그는 '180cm가 넘는 큰 키'에 '날카로운 눈과 빈 틈이 없고 단호한 인상을 주는 매부리코'와 '각이 지고 돌출한 턱'을 갖고 있다. 즉, 강인한 신체, 그리고 이성과 결단력이 부각된다. 그는 또한 목검술, 권투, 펜싱 등 뛰어난 스포츠 실력뿐만 아니라 과학, 법률, 농업, 의학 등 최신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슈퍼맨 명탐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종과 제국주의의 측면에서 살펴볼 때도 여전히 그는 명탐정일까? 코난 도일이 1890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인 '네 사람의 서명'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80㎝ 넘는 큰 키와 강인한 신체 강조
모든 학문·스포츠에 능통한 캐릭터
프랑스 탐정 뒤팽 등 과소평가 하며
영국인 우월성 강조하는 모습도 보여

식민지 인도인은 흉측한 악마로 묘사
지배계급 범죄엔 무관심 이중적 모습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영국 제국주의가 절정에 이른 19세기 말엽이다. 이 시기에 식민지의 타인종들이 대거 영국으로 유입되면서 영국인들은 순수한 영국성이 오염되고 위협받는다는 불안에 직면한다.

또한 19세기 중반인 1857~58년에 발생한 인도 항쟁은 영국인들이 충격과 공포로 '세포이 반란'이라고 불렀듯이, 오히려 역으로 영국이 인도의 식민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즉, 역식민화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엄청난 공포로 작용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서 인도 항쟁은 영국인의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이 항쟁에 참여하는 인도인은 비이성적인 악마이며 반역자로 묘사된다. '네 사람의 서명'에서도 세포이 항쟁을 일으킨 인도인은 영국인에 대한 살인과 방화와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20만명의 시커먼 악마들'로 서술된다.


셜록 홈즈는 19세기 중반 이후 이러한 영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를 달래기 위해 코난 도일에 의해 발명된 탐정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당대 영국 제국주의가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남성으로 탄생시킨다. 셜록 홈즈는 강인한 신체와 결단력, 그리고 범죄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스포츠 실력 등으로 우월한 영국인의 몸과 정신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코난 도일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홈즈는 범죄 현장에 늘 과학과 합리성의 상징인 줄자와 돋보기를 들고 관찰하고 추리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도 영국 범죄과학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장치다. 영국인 탐정 홈즈는 프랑스 탐정인 뒤팽이나 프랑수아 르 빌라르 등을 관찰력이나 추리력, 지식 등에서 자신보다 한 수 낮은 인물로 과소평가함으로써 영국인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반면에 홈즈의 범죄학의 대상이 되는 식민지 출신의 타인종은 미개하고 열등한 야만인으로 범죄와 질병의 원천으로 그려진다. '네 사람의 서명'은 19세기 중반 인도항쟁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한 인도의 보물 탈취 사건에 연루된 영국인이 살해되었을 때 그 범인을 영국인이 아닌 식민지인으로 규정하는 홈즈의 추리와 범죄자 처벌을 다룬다.

이 소설에서 홈즈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의뢰인은 '크고 푸른 눈과 금발 머리에 사랑스럽고 상냥한 표정'을 가진 당대 남성들이 이상적인 영국 여성으로 여기는 미스 매리 모스턴이다. 매리 모스턴의 아버지인 모스턴 대위와 그의 친구인 숄토 대령은 인도 아그라의 값비싼 보물을 차지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군인들이다. 홈즈는 이 보물을 소유하고 있던 숄토 대령을 살해한 사건을 떠맡는다.

살해된 숄토 대령은 근육이 모두 수축되고, 안면 근육이 심하게 뒤틀린 상태로 발견된다. 홈즈는 이것을 강력한 알칼로이드로 인한 중독사로 추정한다. 이 '식물성 알칼로이드'는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식민지에서 유입된 독성 식물로 자주 등장한다. 즉, 달아난 범인은 식민지 출신이라는 사실이 암시된다. 또한 홈즈는 살해 현장에서 범행 증거로 어떤 발자국을 발견하고 돋보기와 줄자를 들고 '보통 성인의 절반도 안 되는 기이한 맨발', 그리고 돌도끼와 살해당한 자의 머리에 꽂힌 '영국산이 아닌' 독침을 근거로 살해범은 인도 안다만제도 출신의 원주민 통가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홈즈는 그 당시 가장 권위있는 책이라고 하면서 '대륙지명사전'에 나와 있는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에 대한 설명을 인용한다.

즉,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은 평균 신장이 120㎝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종족으로서 선천적으로 흉측하게 생기고, 크고 기형적인 머리와 작고 사나운 눈과 뒤틀린 얼굴을 하고 있고, 성격은 사납고, 음침하며, 다루기 어려우며, 지나가는 영국 선원들을 돌도끼나 독침으로 죽인 뒤 그 시체로 식인 축제를 벌인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흉측하고 잔인한 야만인으로 묘사되는 인도 원주민 통가는 독침을 쏘는 범인에 대한 정당 방위라는 명분으로 정당한 재판의 절차나 자신을 변호할 한 마디의 목소리도 없이 홈즈와 왓슨의 총에 의해 현장에서 즉사한다. 결국 문명화된 영국의 상징인 총이 식민지 원주민의 원시적인 살인 무기인 독침을 한 방에 간단히 해결하는 탐정 영웅의 모습에서 영국인의 우월성이 생생하게 부각된다. 이처럼 홈즈는 범죄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주로 인종적 타자인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권력으로 활용함으로써 식민지의 인종적 타자에 의해 영국성이 오염되고 위협받는 상황에서 위험한 타자를 처벌하고 영국인들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영웅으로 부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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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코난 도일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홈즈는 영국인 지배계급의 범죄에는 무관심하다. 모스턴 대위와 숄토 대령은 사실 인도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보물을 손에 넣은 후 영국으로 돌아온 군인들이다. 그러나 홈즈는 이 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이 보물을 상속받을 숄토 대령의 자식들과 미스 매리 모스턴을 위해, 즉 영국 지배계급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을 적극 수사할 뿐이다.


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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