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의 푸른길, 이야기를 따라 걷다] 5. 푸른바다

  • 박관영·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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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02 20:20  |  발행일 2025-07-02
트래커들의 ‘낭만 루트’ 블루로드…맨발길 위에서 오감만족

지난 봄 산불로 폐쇄된 곳도 있지만

푸른바다를 벗삼은 희망의 동행길

오보해변은 왕모래·낮은 수심으로

가족단위 피서객들 즐겨찾는 곳

노물리, 월월이청청 벽화마을로 유명

골모마다 게·고래 등 벽화 남아있어

석리 언덕 위에 형성된 '따개비마을'

BTS 뮤비 촬영지로 알려진 '경정리'

마을 경관이 아름다워 붙여진 지명

이 길의 이름은 '푸른바다'다. 창포말 등대에서 축산항 블루로드다리까지 10.9㎞에 이르는 '블루로드 4코스'로 환상적인 바닷길로 알려져 있다.


이 길은 지난봄의 산불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구간이기도 하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블루로드는 폐쇄됐고 해안 도로를 따라 걷도록 곳곳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저곳 중장비를 동원한 피해시설 철거와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불탄 소나무는 누런색으로 변해 있지만 풀들은 파릇하게 무성하고 활엽수는 풍성한 푸른 잎을 보여준다. 그러니 갈 수 있는 길을 걸으며 그 길에 깃든 이야기들을 소곤소곤 할 참이다. 그러는 동안 푸른 바다는 저만치서 자박자박 함께한다.


영덕 대탄리의 대탄항. 원래는 대탄이라는 이름은, 동해바다 '큰 여울 옆'이라 해여울 또는 해월이라 하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대탄'이 됐다. 대탄리는 캠핑장과 스노클링 포인트로 유명하다.

영덕 대탄리의 대탄항. 원래는 대탄이라는 이름은, 동해바다 '큰 여울 옆'이라 해여울 또는 해월이라 하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대탄'이 됐다. 대탄리는 캠핑장과 스노클링 포인트로 유명하다.

◆대탄리와 오보해수욕장


대탄리 노란 버스정류장이 산뜻하다. 길 따라 이어지는 파랑, 초록, 노랑, 주황 등등의 무지갯빛 방호블록도 선명해 기쁘다. 대탄리는 동해바다 큰 여울 옆이라 해 해여울, 또는 해월이라 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대탄(大灘)'이 됐다.


큰 여울을 가진 마을은 아담하다. 바닷가에 텐트가 서넛 보인다. 대탄리 모래밭의 작은 솔숲은 노지캠핑장으로, 바다로 열린 주차장은 차박 캠핑장으로, 마을 남쪽의 암석해안은 스노클링 포인트로 입소문이 나 있다. "고둥이 많아!" 누군가의 외침도 귀에 담아 둔다.


대탄리 마을은 산불로 건물 18채가 불에 탔다. 도로변 가파른 산 사면에는 산사태를 대비한 공사가 막바지 진행 중이다. 산불이 난 토양은 미생물까지 전멸하면서 무르고 부식돼 비가 오면 토사가 쓸려 내려가 2차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영덕군은 6월 하순으로 예상되는 장마와 강우에 대비해 산불피해전지역에 대한 응급조치를 이미 끝냈거나 마무리하고 있다.


대탄리에서 오보교를 건너면 오보해변이다. 오보천 하구에서부터 약 600m 정도 뻗은 아담한 모래밭이지만 영덕군에서 지정 운영하는 어엿한 해수욕장이다.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몸에 잘 달라붙지 않는 왕모래와 낮은 수심은 어린아이들의 천국이다.


오보리는 조선 정종 때인 1400년경에 개척됐다고 한다. 당시 마을 입구에 까마귀머리 형상의 바위가 있어 오두(烏頭)라 했는데, 오두를 오랫동안 보존해 오보(烏保)라 불렀다고 전한다. 오두는 어디에 있을까.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오두를 찾지 못하겠다.


영덕 노물리 월월이청청 조형물. '월월이청청'은 동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대표적인 여성놀이로 노물리를 중심으로 전승됐다고 한다.

영덕 노물리 월월이청청 조형물. '월월이청청'은 동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대표적인 여성놀이로 노물리를 중심으로 전승됐다고 한다.

◆노물리와 석리


오보해변을 지나 노물리로 향한다. 도로 아래 절벽의 데크 길은 뼈대만 남아 있다. 파란색 마을 입간판이 서 있는 언덕에서 노물리가 내려다보인다. '노물(老勿)'은 '늙지 말라'는 뜻이라 한다. 아마 장수(長壽)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듯하다. 마을은 100~150m 내외의 구릉성 산지에 둘러싸여 있고 산자락이 바다로 내려와 암석해안을 이룬다. 그 산기슭에 집들이 차곡차곡 들어서 있어 동네 전체가 작품처럼 보이는 마을이었다.


노물리의 산불 피해는 컸다. 불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산기슭의 주택 234개 동 가운데 170여동을 삼켰고 항구에 정박해 있던 12척의 배까지 피해를 봤다. 산자락의 과수원과 농경지도 소실돼 30년 넘게 가꿔온 사과나무 수백 그루가 앙상한 가지로 남았다.


노물리는 '월월이청청' 벽화마을로 유명했다. '월월이청청'은 동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대표적인 여성놀이로 노물리를 중심으로 전승됐다고 한다. 골목마다 '월월이청청'을 노는 여인들과 꽃, 두루미, 거북이, 게, 고래, 물고기, 조개, 갈매기 등 다양한 벽화가 조금씩 남아 있다. 붉은 등대가 서 있는 방파제 초입의 '월월이청청' 조형물은 거의 온전하다.


여기서부터 석리항까지 총 2㎞의 '어씽로드(맨발길)'가 조성돼 있음을 기억해 두자. 몽돌길이 1㎞, 영덕군에서 채취한 황토로 조성한 황톳길이 1㎞다. 중간에 만나는 쉼터는 '행복하족(足), 건강하족(足)'이다. 이런 즐거운 이름은 누가 짓는 걸까.


영덕 노물리에는 몽돌길과 황톳길 각각 1km씩, 총 2km의 맨발길 '어씽로드'가 조성돼 있다. 사진은 몽돌길.

영덕 노물리에는 몽돌길과 황톳길 각각 1km씩, 총 2km의 맨발길 '어씽로드'가 조성돼 있다. 사진은 몽돌길.

산불 피해 입은 영덕 석리 따개비마을. 작고 예쁜 집들이 언덕 위에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습이 마치 갯바위의 따개비 같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산불 피해 입은 영덕 석리 따개비마을. 작고 예쁜 집들이 언덕 위에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습이 마치 갯바위의 따개비 같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석리는 바다로 굽이치는 급한 언덕에 층층이 형성된 작은 어촌마을이다. 작고 예쁜 집들이 언덕위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모양이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 같다 해 '따개비마을'이라 불렸다.


수심이 허리까지 오는 바다 놀이터는 누구나 뛰어들기 좋았다. 텐트 존과 바다전망대, 바다문화쉼터 등도 갖추고 있어 물놀이 철이면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마을이 너무 예뻤다.


노물리와 마찬가지로 석리도 산불 피해가 컸다. 마을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 모두 불탔고 주택 2~3채를 제외한 마을 대부분이 전소됐다. 비탈진 땅을 지탱하던 대숲도 대부분 불에 탔다. 100여일이 지난 지금 철거된 건물터의 평탄화 작업은 거의 끝났다. 노물리와 석리는 최근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됐다. 특별재생사업은 대규모 재난 피해로 침체한 지역에 대한 생활 기반을 복원하고 마을 공동체 기능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둔 사업이다. 따개비 마을에 죽순이 올라오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영덕 경정리 백악기 퇴적암.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이 파도에 깎여 평탄해 졌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영덕 경정리 백악기 퇴적암.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이 파도에 깎여 평탄해 졌다.

◆오래된 아름다움, 경정리


1㎞ 전방에 'BTS 화양연화 뮤직비디오 촬영지'가 있다는 안내판을 지나친다. 경정리에 들어선 것이다. 경정리는 해안선을 따라 3리, 1리, 2리로 이어진다. 3리는 오매마을이다. 경정리 오매마을은 약 500년 전에 안동김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일궜고, 이어 김해김씨가 들어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풍수지리에 밝은 한 지관(地官)이 지나다 남쪽에 오두산(烏頭山)이 있고 마을 앞에 매화산(梅花山)이 있으니 마을 이름을 오매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그때부터 오매다. 까마귀가 열매를 물고 들어오는 형세라 오매라고도 하고 한때는 까마귀가 춤을 추며 들어오는 지세라 오무(烏舞)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오매마을은 40여 채의 집 가운데 18채가 불탔다. '오매 향나무'라 불리던 500년 된 당산나무도 불탔다. 고요한 바닷가에 해루질에 몰두해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이 꿈같다.


영덕 경정해수욕장 백불. '백불'은 흰 모래밭이 맑고 화창한 날이면 금빛이 된다 해 생긴 이름이다.

영덕 경정해수욕장 백불. '백불'은 흰 모래밭이 맑고 화창한 날이면 금빛이 된다 해 생긴 이름이다.

경정1리는 백불(白沙)이다. 흰 모래밭이 청명한 날이면 금빛이 된다 해 생긴 이름이다. 백불마을은 세종 때인 1449년에 반남박씨가 마을을 열었고 영해박씨와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함께 큰 마을로 개척했다고 한다.


1425년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에 경정포(景汀浦)라는 지명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경정과 백불이라는 명칭이 두루 쓰인 듯하다.


경정(景汀)은 마을 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해 붙여진 지명이다. 결국, 아름다움은 오래됐다. 방탄소년단(BTS)의 화양연화 뮤직비디오에 경정항의 빨간 등대가 등장한다. 백불과 오매 사이 조그마한 곶도 영상에 등장한다. 오매에서 절벽은 보다 가깝고 선명하게 보이지만 백불에서 보는 절벽은 눈부시다.


항구를 빠져나와 언덕진 길을 오르면 저 아래 바닷가에 펼쳐진 붉은 갯바위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경정리 백악기 퇴적암' 지대로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 백악기에 강 주변의 범람원에서 형성된 퇴적층이 파도에 깎여 평탄하게 펼쳐진 모습이다. 붉은 것은 입자 고운 이암이고, 사이사이 밝게 보이는 것은 모래와 자갈로 이뤄진 사암이다. 실제로 보면 너무 붉어서 깜짝 놀란다.


영덕 차유마을 대게원조마을 표지석. 차유마을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경주로 가던 중 이 마을에서 영더 대게를 처음 먹은 곳이다. 그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라상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영덕 차유마을 대게원조마을 표지석. 차유마을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경주로 가던 중 이 마을에서 영더 대게를 처음 먹은 곳이다. 그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라상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붉은 갯바위 지대 너머가 곧장 경정2리 차유(車踰)마을이다. 고려 충목왕 2년인 1345년에 영해부사 정방필이 마을 순시를 하면서 우마차(車)를 타고 고개를 넘어왔다(踰)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축산항의 죽도산이 손에 잡힐 듯 환히 가깝다.


도로변 작은 동산에 차유마을이 '영덕대게 원조마을'이라는 비석이 있다. 930년 고려의 왕건이 영덕과 영해를 거쳐 경주로 가는 도중에 이 마을에서 영덕 대게를 처음 먹었고, 그때부터 영덕 대게는 조선시대까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게 됐다고 전한다. 비석에는 죽도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비슷해서 대게라 불렀다고 새겨져 있다.


죽도산을 지척에 두고 축산천변을 따라 에둘러 블루로드다리로 간다. 경정리 역시 산불 피해를 입었고 현재 소득 증대와 주거환경 개선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 개발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있다.


블루로드다리 앞에 사람의 귀와 관악기의 일부를 합체해 만든 조형물이 있다. 동그란 마우스피스에 귀를 대어 본다. 파도소리인가, 갈매기 소리인가. 숨비소리인가 하는 것들이 가슴을 두드린다.


폐쇄된 블루로드 길은 여기까지다. '관광이 곧 기부'라고 한다. 관광객의 방문 자체가 가장 큰 보탬이고 응원이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영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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