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 나란히 붙어 있는 오락실과 인형뽑기 가게. 이윤호 기자 yoonhohi@yeongnam.com
올 들어 대구 주요 상권에 오락실과 인형뽑기매장이 크게 늘면서 지역별 상권 특색이 사라지고 있다. 이들 업종이 단기적으로 상권 방문객 수를 늘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상권의 질적 저하, 특히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별 상권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영남일보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구에서 영업 중인 청소년게임제공업소(인형뽑기·오락실 등)는 256곳에 달한다. 이 중 올해에만 58곳(22.7%)이 새로 문을 열었다. 신규 업소를 구·군별로 보면 달서구가 15곳으로 가장 많고 이어 중구(11곳), 동구·북구·달성군(각 8곳), 수성구(5곳) 순이다.
25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인형뽑기방에서 한 학생이 인형뽑기를 하고 있다. 이윤호 기자 yoonhohi@yeongnam.com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지역별 상권에서 비주류로 통했던 청소년게임제공업소는 지난해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구지역 연도별 신규 오픈점을 살펴보면 2020년 13곳, 2021년 11곳, 2022년 4곳, 2023년 14곳에서 지난해 무려 41곳으로 급증했다. 1년 만에 192.7%나 증가한 셈이다. 이런 추세는 올들어서도 이어져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모두 합치면 99개의 청소년게임제공업소가 신규 오픈했다. 다음 달 오픈이 예정된 업소까지 합치면 올해에만 60곳, 최근 2년 사이 100개 넘는 인형뽑기·오락실이 대구 상권에 새로 생겨나는 셈이다.
문제는 화려한 네온 간판과 내부 시설로 무장한 인형뽑기·오락실이 지역 상권마다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상가 전체가 이들 업소에 압도당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동성로28아트스퀘어 일대는 듣던 것 이상으로 인형뽑기·오락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인형뽑기 기계 몇 대를 갖춘 소규모 가게는 물론, 인형뽑기와 오락실이 혼재해 있는 3층짜리 대규모 매장도 어렵지 않게 목격됐다. 반면 이들 업소 주변에는 '임대'라는 문구가 붙여진 빈 상가가 적잖게 있었다. 동성로 상권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빈 상가가 인형뽑기와 오락실 업소로 채워지는 모습이다.
동성로에서 만난 직장인 최모(여·33·대구 북구)씨는 "동성로 중앙무대를 중심으로 과거에 친구들과 쇼핑을 했던 유명 브랜드나 사진 찍는 부스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그 자리를 인형뽑기 가게와 오락실로 채워진 느낌"이라며 "공식적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골목마다 화장품 파는 거리, 의류브랜드 파는 거리 등으로 친구들과 분류했던 같은데, 이제는 인형뽑기 같은 업소가 많이 생기다 보니 상권을 구분하는 개념이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인형뽑기·오락실 증가에 인근 상인의 반응은 엇갈린다. "상권 침체가 계속되다 보니 공실이 늘어나는 것보단 이 같은 업소라도 입점해 방문객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게 좋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지역 상권의 특색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쪽도 있었다.
이준호 동성로상점가상인회장은 "상인 입장에선 물가·인건비 상승이 이뤄지고 있다 보니 선뜻 가게를 열기가 힘든데, 인형뽑기나 오락실은 그런 비용이 들지 않아 부담이 덜하다. 건물주의 입장에서도 다른 상가가 들어오기 전까지 (인형뽑기·오락실을) 단기적으로 운영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하지만 동성로가 전국을 대표하는 상권인데, 단기적인 업소라고 볼 수 있는 인형뽑기·오락실이 빈 공실에 과도하게 많이 생기는 것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실제 인형뽑기방은 단기 수익을 노린 창업자나 전문업체가 몰리기 쉬운 업종이다. 인기가 많을 때는 유행을 타지만, 이후에는 빠르게 폐업하며 다시 상가가 공실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업소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소비를 유도하지 못하는 업종이다 보니 침체된 상권의 체질 개선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자칫 상권의 특색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남대 윤정현 교수(경영학과)는 "동성로 경우 현재 상가 공실이 많은 상태지만, 이 같은 업소가 늘어나 방문객이 늘어난다면 말 그대로 '임시방편적인' 상권에 그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상권의 성장을 저해하고 소상공인에게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성로는 청년이 많이 오가는 상권이기 때문에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형 상권을 만들어가는 게 좋다. 단순히 병원·옷가게에 그치지 말고 축제 혹은 팝업스토어와 접목한 문화적인 골목상권을 계속 만들어줘야 방문객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구 상권, 인형뽑기·오락실 급증…2년 새 100곳 넘게 생겨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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