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배구와 전문직

  •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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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1-12-08 07:16  |  발행일 2021-12-08 제면
프로배구계 질서 흔든 사태

파문 女감독과 '악수 거부' 항의

전문직업 집단의 자정 노력

민주화와 시장화 우선 사회

교정·보완할 새 방향 제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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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여야 주요 후보가 결정되고 선거대책위원회 진용이 마무리되면서 한국사회는 본격적으로 내년 3월9일 대통령선거를 향한 선거전에 돌입했다. 하루가 멀게 쏟아지는 선거 관련 소식들이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가운데, 한쪽에선 앞으로 한국사회가 변화할 방향을 예고하는 듯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간략하나마 이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최근 진행된 여자 프로배구리그의 특정구단을 둘러싼 감독 교체 및 감독대행 임명과 관련한 이야기다.

여러 스포츠매체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사태의 곡절에 대해서는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단지 구단 소속 선수의 이탈 문제와 관련해 감독이 경질되고, 이후 모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선임되면서 프로배구 팬들은 물론 배구계 안팎의 비판이 쏟아졌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래지 않아 해당 감독대행이 자진 사퇴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주목하고 싶은 초점은 문제의 감독대행에게 프로배구 팬들 및 배구계 안팎의 비판이 전달된 방식이다. 프로배구에서는 매 경기를 시작하기 전 양 팀 감독이 중앙선에 나와 악수하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사태가 악화된 이후 첫 경기에 나선 상대 구단 감독이 문제의 감독대행과 악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해프닝은 의외로 적지 않은 파문을 낳았고, 곧바로 많은 스포츠언론과 유튜버들이 주목하는 현안이 되었다. 결국 여자 프로배구리그 일곱 구단 가운데 나머지 다섯 구단의 감독에게도 악수 여부를 문의하는 기자들의 취재가 이어졌고, 모두가 악수를 거부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감독대행의 자진 사퇴가 발표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사회는 민주화와 시장화라는 두 축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었다. 이 모두는 개인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측면과 함께 사회 속의 모든 권위를 정치시장과 경제시장의 결과로 환원하는 경향을 노골화했다. 한마디로 더 많은 투표나 더 많은 화폐를 얻은 권위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권위는 존립위협을 받게 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회 속 여러 가지 권위를 어떻게 투표와 화폐라는 두 가지 척도로만 환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사회에서 모든 것을 정치화하고 또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경향이 노골화되면 될수록 학문과 예술, 교육과 도덕, 직업 세계와 시민사회의 수많은 다른 가치의 귀중함을 아는 뜻있는 시민들은 민주화와 시장화를 교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제3의 방향이 무엇일지를 애써 찾아왔다.

일찍이 정치화와 상품화의 광풍을 경험한 유럽과 미주의 사회이론가 중 일부는 이와 같은 고민 속에서 이른바 전문직 윤리와 전문직 권위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상당히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한 사회 속의 전문직업집단을 엄격한 직업윤리에 입각한 제3의 권위 주체로 가꾸어 민주화와 시장화로부터 구별해 배치하려는 사회적 전략이다. 이들 선진국들에서 의사집단, 법률가집단, 교사 및 교수집단 등이 가지는 독특한 사회적 위상은 바로 이러한 전략의 소산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식민지시대 이래 오랜 관료 의존적 전통에 찌든 대한민국의 전문직업 집단들에게 과연 이 같은 제3의 노선은 적실성을 가질 수 있을까? 지난 30년 동안 전문직주의에 입각한 사법개혁을 앞장서 주장해오면서 나는 점점 이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사태를 관찰하면서 어쩌면 그동안 전혀 주목하지 못했던 프로스포츠계로부터 프로페셔널리즘의 새로운 동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된다. 여자 프로배구 감독들이 겪었을 남모를 고민과 결단의 무게,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프로배구 팬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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