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국내 최고 癌 권위자' 박재갑 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 "팬데믹 시대…세포주은행이 대한민국 미래 성장동력 근간 될 것"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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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16 08:07  |  수정 2022-02-16 08:10  |  발행일 2022-02-16 제14면

박재갑원장
오래전부터 '운출생운(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걷기운동)'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는 박재갑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식사법과 관련해서는 "중용이 좋다"며 "너무 짜지 않게, 너무 달지 않게, 너무 기름지지 않게, 너무 고기만 먹지 않게, 너무 채소만 먹지 않게 극을 피한다면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을 지낸 박재갑 서울대 명예교수의 명함은 '엣지'있다. 목을 꺾은 담배를 들고 있는 그의 캐리커처와 함께 '담배 제조 및 매매 금지, 운동화 출근 생활 속 걷기 운동, 건강검진'이라는 글이 이름 위에 적혀 있다. 모든 국민의 '안녕'을 위해 헌신한 그의 평생을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여러 공직을 거쳐 2013년 서울대 의대 교수 32년을 정년퇴직한 후 현재는 생명과학 분야 연구개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세포주를 국내외에 원활히 공급하는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유화, 민화, 서각, 판화, 전각, 조각, 도예, 서예 등을 두루 섭렵한 '취미 부자'로 살고 있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예술'은 그 수준이 아마추어의 경지를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이사장을 최근 서울대병원 내에 있는 한국세포주은행에서 만나 장기화하고 있는 코로나 시대, 현대인의 열망인 '웰빙(Well-being)'에 대해 물었다.

▶명함이 이색적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모두 운동화 차림이다. 발이 편해야 몸이 제 역할을 다한다. 오래전부터 생활 속에서 신체 활동량을 늘리자는 의미로 '운출생운(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걷기운동)'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건강 특히 각종 암 예방을 위해서는 금연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국가적으로 담배의 제조 및 매매 금지가 시행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금연운동을 맹렬히 전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명함에 담았다."

▶활발한 신체 활동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제 전공인 대장암을 예로 들어보겠다. 예전엔 대장암을 예방하려면 고기를 덜 먹고 섬유질 성분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그랬다. 하지만 요새는 콘셉트가 바뀌었다. 교과서에 대장암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체 활동 증진으로 돼 있다. 운동이 주요 질병을 얼마나 줄이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했더니 암 사망이 10% 줄고 심혈관·뇌혈관 질환이 20~3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건 어마어마한 숫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건강기능식품도 암 사망률을 1%라도 낮췄다고 공식적으로 증명된 게 없다. 또 어떤 비타민도 암 사망률을 낮췄다고 증명된 게 없다. 운동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전 세계 항암제 검사용 세포주 중 7.4% 공급
분양 가능한 세포 종류는 글로벌 상위 5위 내
제약·바이오벤처 등 생명과학 산업 성장 지원

운동화 신고 하루 30분 이상 빨리 걷기만으로
암 사망률 10%, 심·뇌혈관 질환 20~30% 감소
너무 짜고 달지 않게…건강하려면 식사도 중용"



▶운동을 어떻게 어느 정도 하면 될까.

"전문가 심포지엄에서 내린 결론인데, 운동화 신고 하루에 30분 이상만 빨리 걸으면 된다. 빨리 걷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그 사람이 약간 숨이 찰 정도, 그게 그 사람한테 빨리 걷는 걸음이다. 모든 운동의 장점이 거기 다 녹아 있다."

▶'운출생운' 캠페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10년 국립중앙의료원장 때 당시 우리 국민 5대 질병 사망률을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됐다. 모든 국민이 운동화를 신고 햇빛이 좋을 때 나가 30분 이상 빠른 걸음으로 걷는 생활을 일상화하면 질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여기에 건강하게 살려면 '너무'라는 글자를 피하는 게 좋다. 너무 짜지 않게, 너무 달지 않게, 너무 기름지지 않게, 너무 고기만 먹지 않게, 너무 채소만 먹지 않게. 식사는 중용이다. 극을 피한다면 건강에 좋다."

▶금연운동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담배의 제조 및 매매 금지를 요구하고 있는데.

"담배를 파는 거 자체가 사기다. 담배 속에는 발암물질이 70종이나 들어 있다. 발암물질이라는 것은 몸에 들어가서 내 몸의 유전자를 바꾸는 특징이 있다. 우리 몸의 유전자를 바꾸는 발암물질이 한 종만 검출돼도 난리인데 그렇게 많이 들어있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담배를 제조하고 팔게 하느냐 말이다. 국가적으로 담배의 제조 및 매매 금지가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 및 2대 원장을 역임하면서 TV나 각종 언론 매체에서 빈번하게 나오던 흡연 장면이 나오지 않도록 캠페인을 벌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것이 건강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리고 국가에서 해주는 건강검진만 꼬박꼬박 받으면 장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인류의 최대 적인 암을 정복한 나라라고 할 수 있나.

"현재 암 관리가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다. 그러나 1995년 내가 서울대 암연구소장을 맡았을 당시 암 예방이나 치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다. 그때 이미 미국은 암법, 일본은 암 극복 10개년 계획을 통해서 국가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바로 이거다 했다. '암 정복 10개년 계획'을 입안하고 국가암검진사업 확대와 암관리법 제정, 지역 암센터 설치 등 국내 암 치료 및 관리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는데 앞장섰다. 그 후로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 국립중앙의료원 초대 원장 겸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됐다."

▶'세포주 은행'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982년 지도교수가 본인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 능력이 떨어졌다는 실험을 해보라 지시한 게 발단이 됐다. 그 과정에서 실험에 쓰이는 세포주가 모두 수입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평생 세포주 개발을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막상 연구에 들어가니 지도해줄 사람이 없었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우리가 은행 역할을 하는, 1991년에 한국세포주은행을 포함하는 비영리 공익법인 한국세포주연구재단을 만들었다. 이게 유엔 산하 WIPO(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세계지적재산권기구)로부터 '미생물 특허에 관한 부다페스트 조약상의 특허 미생물의 국제 기탁기관'으로 승인받았다. 현재 한국세포주은행이 제공하는 세포주가 전 세계 항암제 검사용 암 세포주 총 1천46종 중 7.4%에 해당하는 77종에 이른다. 분양 가능한 세포 종류는 글로벌 시장 상위 5번째 안에 든다. 생명과학 한다고 하는 제약회사, 식품회사, 바이오벤처할 거 없이 전부 우리한테 세포주를 가져간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포주 은행'의 위상이 높아졌을 듯하다.

"좀 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마음속에는 생명산업계의 포항제철과 한국전력을 합한 것의 주식을 100% 다 가진 알부자라는 그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물론 밖으로 표시는 안 하지만 그만큼 속으로 흐뭇하다. 향후 이 세포주 은행이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의 근간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은 예술가로서의 활동이 활발한데.

"2011년 국립중앙의료원장 사표를 내니 아내가 '바쁘던 사람이 놀면 안 된다'며 취미활동을 권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당시 딸이 다니던 홍익대 평생교육원에 입학해 그림을 배웠다. 처음엔 유화를 그렸다. 이어 비단 채색·민화를 배우던 중 펜화와 펜담채의 세밀한 선에 매료됐다. 이것저것 관심 두고 배웠지만, 종래엔 자연에 가까워지는 게 순리인지 묵향 가득한 서예가 좋다. 서각도 너무 매력적이다. 남은 삶은 서예와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일평생 어려움 없이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내 뜻대로 된 것보다는 주위 환경이나 주위의 권유나 부모님이나 여러 가지 주위 상황이 저를 만들어준 것 같다. 상주박씨인데 조선시대 사화로 멸문지화를 당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충청도로 이주했고 그 이후로 정치 쪽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것이 집안의 불문율처럼 내려와 정주하게 됐다. 부모님은 늘 '이 자식아, 배곯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했다. 한 번도 돈 벌어라, 성공해라, 출세해라, 이런 용어는 쓰신 적이 없다. 의대 가고 교수 되고, 국립암센터 원장·국립중앙의료원장에 이르는 과정도 비슷하다. 뭔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 적이 없고 그저 처한 환경 속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어려움에 처한 주변에 조언한다면.

"꿈보다 해몽이라고 아무리 나쁜 꿈을 꿔도 해몽을 잘하면 저는 좋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저라고 브레이크가 걸리고 안 되는 일이 왜 없겠나. 그러면 늘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해몽을 잘하면 어디나 천국이다' 스스로 주입한다. '평범하지만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것은 진리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박재갑= 1948년 청주 출생, 경기고·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의학박사, 서울대 의대 교수(1981~2013년), 서울대 암연구소장,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 아세아대장항문학회 회장, 국립중앙의료원 초대 원장 겸 이사회 의장, 세계대장외과학회 회장 등 역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8),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현), 한국종교발전포럼 회장(현), 서울대 명예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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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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