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
연초에 한 모임에서 재정 부처의 공무원이 방방곡곡마다 문화체육시설 등 사회간접자본투자가 차고 넘쳐서 낭비가 많다고 비판하는 말을 들었다. 직접 대꾸하지는 않았지만, 말끝마다 가성비를 따져 묻는 말투가 꽤 언짢았다. 그 말투에는 지적 우월감과 탄식, 그리고 우국충정이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 관료들 말로 하자면, 무슨 무슨 부 스타일이랄까?
하지만 20년 동안 지방분권을 주장하고 다녀서인지 그 약간은 쌀쌀맞고 매몰찬 입바른 소리가 내게는 별다른 설득력이 없었다. 합리성의 기준을 중앙이 아니라 지역의 관점에서 뒤집으면 곧바로 정반대의 입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하~그래. 그러니까 이제 대한민국의 각 지역은 하드웨어, 즉 사회간접자본을 어느 정도 갖춘 셈이란 말이지! 그런데 이상하다. 왜 지역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인구와 생산은 줄고, 공동체의 활력은 떨어지기만 하는 걸까? 사회간접자본 말고 다른 무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데 왜 이 공무원은 가성비만 따지려 들 뿐 그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려는 생각이 없는 걸까?"
솔직히 자가운전에 익숙하기만 하다면 오늘날 지역의 삶은 그리 불편하지 않다. 인터넷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어디서건 30분만 운전하면 고속전철이나 고속도로망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정한 소득만 보장되고, 초중등교육과 의료시설만 충분하다면 좁은 주거와 지옥철, 그리고 미세먼지에 찌든 수도권보다 나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수도권을 떠나 지역으로 옮기는 일은 아직 지극히 드문 예외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문제의 핵심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생각한다. 각 지역 공동체마다 인구 감소와 함께 삶의 의미를 생산하고 정체성의 토대를 만들어낼 문화적 자본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문화적 자본이 없으면 사회간접자본이 완비되더라도 지역 사회의 생명력, 즉 '사람 사는 맛'이 살아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문화적 자본은 공연장,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 시설을 넘어선다. 그러한 하드웨어를 '사람 사는 맛'으로 연결할 사람들, 즉 문화예술인들과 그 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하다. 지역의 문화적 자본을 보강하려면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지역의 문화예술 네트워크가 살아야만, 기왕에 만들어 놓은 하드웨어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가운데 '지역의 제작 극장' 아이디어는 단연 돋보인다. 그동안 지역의 공연장은 공무원이 관리하는 대관 시설이었고, 공연기획은 서울의 문화예술 네트워크가 도맡았다. 그 결과 문화예술의 중앙집권은 당연시되었고, 각 지역은 단지 '지방 순회공연'의 대상지로 여겨졌다. '지역의 제작 극장' 아이디어는 이러한 관성을 단번에 뒤집는다. 각 지역의 공연장이 문화예술인들을 직접 고용한 뒤 스스로 공연을 기획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각 지역에 '사람 사는 맛'을 창조할 문화예술 네트워크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에게도 지역 거점이 생긴다.
경제나 산업의 균형발전에 비하면 문화예술의 균형발전은 큰 예산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처럼 많지 않은 예산으로도 젊은 문화예술인들을 제작 극장에 불러 모으면 '사람 사는 맛'을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지역의 제작 극장을 문화적 자본의 아지트로 삼자는 이 공약에 모든 후보가 뜻을 같이하면 좋겠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케치] 대선 후보 출마 방불케한 김부겸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대구서는 TK 출마자 챙겨](https://www.yeongnam.com/mnt/webdata/content/202603/5_26.03_.30_김부겸_대구시장_출마선언_썸네일_출력본_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