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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국민체육센터에서 만난 남계선씨. |
6일 오전 11시쯤 경북 울진 국민체육센터. 최근 10년 새 전국에서 가장 큰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저마다 긴박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밤 늦은 시간 급하게 대피했던 주민들은 대부분 제대로 짐도 꾸리지 못한 상태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산불 특보 소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5일 오전 1시쯤 급하게 대비했다는 남계선씨는 "울진군에서 대피하라는 연락이 와서 밖을 보니 불이 집 뒤까지 와 있었다"며 "집이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에 물도 뿌려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내와 겨우 몸만 빠져 나왔다"며 급박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남씨는 "첫날(4일) 불이 났을 때는 집까지의 거리가 2㎞ 이상 떨어져 있어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불이 순식간에 집까지 닥쳤다"며 "대피 순간이 너무 급박해 소와 개는 구할 수 없어 우사 문을 열어두고 왔다"고 덧붙였다.
지역 특성상 주민 대부분은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평생 울진에 살면서 이렇게 큰 불은 처음 경험했다고 입을 모았다. 임병기씨는 "80년을 살면서 이렇게 큰 불은 처음 본다. 언제 꺼질지 걱정"이라며 "윗마을, 아랫마을 모든 사람들이 대피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대피 당시를 떠올렸다.
이재민들 대부분은 아직 혼란스러움과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산불이 발생한 북면 두천리 인근에 거주하는 임병학씨는 "대피했다가 집에 가보니 다 타고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농사를 지어서 넣어 둔 벼를 비롯해 모든게 다 탔다"며 "하루 속히 피해 복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피방송을 듣고 급하게 짐만 꾸려서 나온 주민도 많았다. 이들은 화염 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주모(울진읍)씨는 "불이 막 내려오는게 눈에 보여서 급하게 몸만 피했다"며 "빨리 집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짐만 꾸려서 나왔기 때문에 집이 탔는지 어떻게 됐는지도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글·사진=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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