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사학 바로 알리기 앞장' 홍택정 경산 문명중·고 이사장 "私學의 대한민국 발전 기여 공로 인정 않고 자율성마저 뺏으려 해"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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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9 07:41  |  수정 2022-03-09 07:46  |  발행일 2022-03-09 제14면
"창의성과 아이디어 분출돼야 할 교육
국가주도 획일적 정책 탓 다양성 말살
사학의 건학이념 존중될때 변화 가능
국정 역사교과서 신청때도 온갖 공격
개편 검정교과서 보면 한숨 나올 지경
뭐가 잘못인지 대통령과 토론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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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택정 문명중·고 이사장은 "정부가 사학을 왜 이렇게 천대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한국 교육의 조강지처가 사학이다. 광복이 되고 나서 나라에 큰 기여를 했는데 그 조강지처를 버리려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로 불거진 대한민국 역사전쟁의 한복판에 섰던 경북 경산 문명중·고의 홍택정 이사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 당시 현장을 고스란히 기록한 '문명고, 역사지키기 77일 백서'와 새마을운동의 역사성을 되돌아보는 '대통령과 쇠똥소령'이라는 책을 연이어 펴내면서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사학법 개정 반대를 주도하면서 '대한민국의 사학' 바로 알리기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열린 '국가 발전을 위한 사학의 자율성 강화 국회 대토론회'에서 발표자로 참가한 홍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로 전국적 인사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사학문제를 들고 나왔다.

"올해 3월부터 사립학교 교원 신규채용 1차 시험 시도교육청 강제 위탁 및 학교운영위원회 심의기구 격상 등이 시행된다. 이는 정부가 사학의 자율성과 인사권을 빼앗는 것이다. 문명중·고를 포함해 경북의 사학계는 2017년부터 5년간 이미 참여법인 공동관리로 채용시험제도를 마련해 교사를 채용하는 등 인사를 투명하게 해 왔다. 왜 정부가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공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나와 모든 것을 국가가 주도하려는 것은 사회주의식이다. 이래선 국가경쟁력만 떨어뜨린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 주도의 교육정책과 표준화된 교육 과정 틀이 강화되었다는 건가.

"그렇다. 사학은 고유의 건학이념이 존중될 때 의욕이 넘치는 적극적 투자와 변화가 이루어진다. 지금은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사학의 공로를 인정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찾기 힘들다. 세계적인 야구선수 류현진·박찬호·추신수, 그리고 골프선수 박세리, 축구선수 손흥민,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등은 스스로 자신의 장점과 재능을 일찍 파악하고 키워나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분출돼야 하는 교육에 있어서 획일적이고 경직된 국가 주도는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고 급기야 낙오하게 된다. 맞춤식 개인훈련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국가 주도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손쉬운 국가 주도는 다양성을 말살하고 참여의식을 저하한다. 마침내 문재인 정부가 사립학교를 사립학교가 아닌 정의가 없는 기형의 학교로 만들어 버렸다."

▶문명교육재단은 어떤 곳인가.

"1908년 증조부 홍석표, 홍규표, 김우곤 등 8인이 재산을 출연해 문명보통학교로 개교했다. 1945년 광복 전에 법인에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공립화돼 잊혔다. 선친 홍영기께서 칠곡초등과 이서고등공민학교(현 이서중·고교) 설립 준비위원으로 계실 때 6·25가 발발했다. 이서고등공민학교에 후퇴한 국군들이 주둔하게 되자 33명의 학생들이 학도병을 지원했다. 담임교사로서 보호자를 자임, 공병 병과로 동반 입대해 전사자가 3명에 불과했다. 그 후 10여년 군생활을 마치고 예편해 귀향, 농촌계몽 운동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과거 조부님이 설립한 학교를 찾아 1966년 학교법인 문명교육재단으로 조직 변경해 문명중·고를 설립했다. 이후 1992년 운문댐 건설로 경산시 백천동으로 이전하였다. 본교야말로 순수 민간이 설립한 민족학교라 자부한다."

▶언제부터 학교에 투신했나.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좀 자유주의자다. 아무 데도 얽매이기 싫고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생각이 커서 사업을 하다가 조금 성공을 해서 살 정도가 된 40대 초반인 1992년쯤 은퇴했다. 그런 제게 선친이 감사하게도 학교 재단을 맡기셨다. 이사장은 월급 한 푼 못 받는 무급이다. 예를 들면 1만원짜리 이상 밥을 먹지 않고 검소하게 생활한다. 학교에 친족 채용이 전혀 없다. 무고한 진정 등으로 감사를 여러 번 받았지만 단 하나의 티끌도 나온 것이 없다. 선친은 한번 물면 안 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집념과 추진력이 대단한 분이셨다. 그런 DNA를 좀 물려받았는지 부당한 압력에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정당한 일일 때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을 한 것은 민족 사학이라는 자부심이 작용했나.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 대상 1호'로 찍어 박근혜 정부가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를 백지화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연구학교'로 지정되고 철회된 것도 한때의 소동으로 끝났다. 그런데 지난해 개편된 검정 역사 교과서 8종을 보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한 교과서는 우리 현대사 기술에서 '독재'라는 표현을 27회, 북한에 대해서는 한 번만 언급했다. 북한이 내놓은 주장 그대로 '유일(唯一) 체제'라고만 쓰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폭격 등 북한의 무력 도발은 빠져있고, 북한 정권을 평화주의자로 비치게 해놓았다. 불과 3년밖에 안 지난 촛불 집회를 '21세기형 민주혁명'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마주 서서 웃고 있는 전면 사진도 나온다. 대신 보수 쪽 전직 대통령들은 수의 입은 모습도 실려있다. 국정 교과서가 나쁘다고 폐기했으면 더 좋은 교과서가 나와야 하지 않나. 이런 교과서를 만들려고 그 난리를 쳤는지. 겨우 고교교사 2인과 교수 1인이 집필자인 검정에 비해 국정은 27명의 전공 석학들이 역사·문화·경제 등 분야에 걸쳐 완벽한 교과서를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읽어 보았는지. 언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맞짱 토론을 하고 싶다."

▶당초 '국정화' 추진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국정역사 교과서의 등장은 좌편향 왜곡된 8종의 검정교과서의 문제점 때문이다. 본교는 검정과 국정을 비교 연구하는 연구학교를 신청했다. 그럼에도 국정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호도해 민노총과 전교조, 농민회와 장애인 단체까지 교장실에 난입하고 입학식까지 무산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합법적인 과정을 거친 학교의 선택에 대해 단 한 번의 토론도 없었고,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이란 절차를 외면하고 불법폭력으로 포기시키려 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건학이념을 구현하며 학교의 정당한 학사진행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경영자로서 당연한 선택을 했다."

▶'문명고, 역사지키기 77일 백서'를 발간했는데.

"학교 경영의 책임자인 나는 분노를 참으면서 '광란의 77일'을 지켜봤다. 당시에 입만 벌리면 '법치'니 '민주적 절차'라고 떠들던 전교조·민노총 등의 세력이 학교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그때 있었던 사실을 기록으로는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발간한 '대통령과 쇠똥소령'이라는 책도 주목을 끄는데.

"청도군 운문면 방음동을 중심으로 농촌계몽운동을 처음 시작한 공로로 1968년 첫 5·16민족상을 받은 선친(홍영기 문명교육재단 설립자)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면서 새마을운동의 역사를 재조명해 봤다. 선친 쇠똥소령 홍영기는 평생을 국가와 사회를 1순위에 두고 사셨다. 선친의 활동상이 신문지상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KBS는 '인간승리' '기적은 없다' 등 수편의 다큐로 제작해 방영했다. 새마을지도자 연수원에서 성공사례도 여러 번 발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선친께 친서를 보내 격려해 주시기도 했다. 올해 97세인 모친은 선친을 내조하느라 정말 죽을 고생하셨다. 이런 과정을 더듬어 들어가다 보니 새마을운동의 역사에 오류가 발견되었다. 새마을운동 역사 연구를 하게 될 후학들이 이 책을 지침서로 삼기를 바란다."

▶왜 그렇게 역사 문제에 천착하나.

"역사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학교 재단 운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개인과 국가의 정체성이 확고한 애국시민 양성이 목표다. 상대를 존중하고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정의로운 사람, 약속을 지키고 행동에 책임지는 사람으로 양성하고 싶다. 진학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교 폭력이 없는 유기농 교육을 하는 학교가 목표다. 부수적으로는 경거망동 말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 사실 우리 학생들은 성적도 아주 괜찮은 편이다. 작년에도 서울대 둘이나 가고 올해도 하나 가고 카이스트·포스텍도 간다. 그래도 나는 학교에 오면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특별활동을 많이 강조하는 편이다. 동물원을 만들어서 닭도 키우고 토끼·개도 기르게 한다. 넓은 도서관에서 다양하고 많은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고, 수학여행도 직접 기획한다." (홍 이사장은 학생들의 원고를 묶어 발간한 교지 '문원'을 필자에게 건네며 자랑스러운 듯 흐뭇한 웃음을 던진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홍택정 이사장은?= △1946년 청도 출생 △마산고·영남대 졸업 △문명 중·고등학교 이사장(2008년부터 현재까지) △사립 경북법인협의회 회장(현) △국사문제연구소 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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