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대선 복기

  •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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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9   |  발행일 2022-03-29 제22면   |  수정 2022-03-29 07:37
초박빙의 기록 세운 20대 대선
尹, 역대 최소격차 득표율 당선
정권 심판과 교체 바라는 民意
오만한 집권여당에 응징 투표
이번 대선 최고의 승부처 '서울'
집값 폭등이 민주당 패배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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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대 대선이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지만 막상 투표함 뚜껑을 열고 보니 정말 박빙이라도 이런 박빙이 없다. 개표 결과 중계방송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방송3사 출구조사와 아주 근접하게 나와서 오랜만에 출구조사가 체면을 세웠다. 윤석열과 이재명, 두 후보의 득표 차는 불과 24만표(총투표의 0.73%)로 역대 대선 최소의 차이였다. 이런 박빙 기록은 앞으로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지나간 대선을 한번 복기해보자. 바둑이라는 게임은 다른 게임에 없는 복기라는 독특한 관행이 있다. 승부가 끝난 뒤 두 대국자는 승부처를 놓고 다시 바둑돌을 놓아가면서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하며 토론을 하는데, 어떨 때는 복기 시간이 대국 시간보다 더 길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이렇게 두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가상적 시나리오를 무수히 펼치는데, 이 과정에서 양자가 대국 중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복기는 바둑을 배울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학습과정이다. 사실 바둑 실력이 느는 것은 대국보다는 복기를 통해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선 복기의 출발점은 대선의 성격 규정이다. 이번 대선은 무엇보다 현정권에 대한 심판이냐 아니냐의 싸움이었다. 현정권이 잘못한 것으로 사람들이 드는 것은 부동산 폭등, 인사 실패, 조국 사태다. 주간지 '시사인'이 대선 직후 2천여 명의 표본조사를 했는데, 거기서도 현정권에 대한 응징 표심이 승부를 갈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권교체론이 최근 몇 년간 줄곧 정권유지론을 능가했기 때문에 돌이켜 보면 결국 이번 대선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다수 국민의 뜻이 기어코 관철되고야 만 선거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선거는 대체로 응징투표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오만한 집권여당에 대한 견제 기능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그런 성격이 강했다고 본다.

다만 선거 초기에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던 정권교체론·정권심판론의 위세가 후기에 가서는 약한 우위 정도로 낮아졌고, 최종 결과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간발의 승리로 끝났다. 예상외 박빙의 이유는 무엇인가. 윤석열 후보와 그 배우자의 자질 및 능력 문제, 그리고 민주당에서 선거 막판에 들고 나온 정치교체론이라는 대안적 담론의 설득력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지나놓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정치교체론은 정권교체론을 능가할 정도의 설득력을 가진 아주 유력한 담론이었고, 만일 이게 몇 달만 일찍 나왔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막판에 터진 대장동과 부산저축은행 사건에 대한 김만배의 충격적 발언 녹취록이 한 달만 일찍 터졌더라도 대선 결과는 국민의힘이 장담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정책 공약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재명 후보의 선거 전략 중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탈모 치료 같은 것이 전형적 소확행 공약인데, 민주당은 소확행 공약을 90여 개나 발표했다. 얼핏 보면 인간은 이런 소소한 이익에 혹해서 표를 줄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역대 대선을 돌이켜보건대 우리 국민은 거시적 담론, 시대정신에 따라 투표했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다. 더구나 정권심판·정권교체 열망이 폭풍우처럼 몰려오는 판국에 소확행은 너무나 안이한 전략이었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폭풍우를 이기는 전략은 소확행이라는 작은 우산이 아니고, 더 큰 바람을 일으켜 용감하게 싸우는 것밖에는 없었다. 복기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 바둑을 둘 때는 이런 게 잘 안 보이는 법이다.

수많은 정책 공약 중 가장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부동산 정책이었다고 본다. 이재명 후보의 부동산 정책이 5년 전 대선 때의 기본소득과 결합한 국토보유세라는 선명하고 강력한 색채를 상실하고 세금감면과 공급확대라는 보수 기조로 흐르고 만 것은 참으로 수수께끼다. 결과적으로 바로 이게 패착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원래 부동산을 보는 시각에서 공급확대는 보수파와 토건족의 논리가 아닌가.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공급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는 그 이전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능가하는 높은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부동산 폭등이 일어난 원인은 투기적 수요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후보가 부동산 세금 깎아주겠다, 공급 늘리겠다 이런 공약을 발표하니 국민의힘 후보와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정책에서 우위에 설 결정적 기회를 상실해버렸다. 세금감면이나 공급확대는 원래 국민의힘의 주특기다. 상대방 주특기로 경쟁해서는 이기기 힘들다.

무주택 서민들이나 1주택 중산층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폭등에 실망, 분노하고 있던 차에 이재명 후보의 공약이 윤석열 후보와 별로 다를 바 없으니 이재명 후보를 찍어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주택자들 중 이재명 후보를 찍은 사람이 의외로 낮아서 52%밖에 되지 않았다. 1주택 그리고 2주택 이상 소유자를 보더라도 두 후보 사이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나지 않았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 이번 대선 최고, 최후의 승부처였던 부동산이 승부처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주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는 결과가 나왔고, 그게 승부로 직결되었다.

영남·호남·충청은 과거 투표 패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과거 민주당이 승리하던 서울에서 꽤 큰 표차로 패배한 것이 민주당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그 근본 이유는 부동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선거 패배 직후 발 빠르게 부동산 세금 깎아주기 법안을 제출하는 걸 보면 말문이 막힌다. 민주당은 대선에 지고도 진 이유를 모르고 있으니 이런 정당은 재기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닌가. 승패는 병가지상사지만 패배한 뒤가 중요하다. 제대로 복기를 해서 패배한 이유를 알아야 다음에 이길 수 있다.
전 청와대 정책실장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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