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
지난 3월부터 애플TV+에서 방영하는 '파친코'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이 드라마는 뉴욕타임스가 베스트셀러로 선정한 이민진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이민자 가족의 대서사를 다루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1.5세대 이민자인 이민진 작가는 일본인 남편을 따라 잠시 들르게 된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다 투신자살한 소년의 사건을 접하고 미국의 이민자와는 또 다른 이민자의 삶을 살아온 재일조선인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십수 년 자료조사 끝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제목으로 붙여진 '파친코'란 서양의 슬롯머신과 비슷한 일종의 도박기계를 의미하는 말인데, 이 파친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재일조선인이다. 흔히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조선인들이 파친코 산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본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때문이다. 외국인에 대해 폐쇄적이고 주류사회로의 진입장벽이 높았던 일본사회에서 학력에 상관없이 그들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자신들의 재능과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곳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연예계나 스포츠계, 그리고 파친코 산업이나 야쿠자 같은 어둠의 세계에 재일조선인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혹자들은 이 드라마가 일본의 혐한의 뿌리를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를 접하고 일본 유학 시절 어느 수업이 떠올랐다. 일본의 '피차별 부락민'에 대한 내용이 수업주제로 나왔을 때의 일이다. '피차별 부락민'은 보통 줄여서 '부락민'이라 불렸는데, 이들은 전근대 시기에 가축의 도살이나 형장의 사형집행인, 피혁 가공 등과 같은 일에 종사하던 이들로 불가촉천민 취급을 당한 계층이다. 그런 부락민에 관한 차별의 역사를 다루던 중 교수가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며 근대 이후 형성된 또 다른 사례로 재일조선인 부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때 주변 어른들이 종종 조선인 부락은 더럽고 위험하니 되도록 피해 다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국인 유학생이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데도 무심한 듯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그 말에 다소 충격을 받았던 나는 약간의 반발심에 교수를 향해 "일본인들의 차별 속에 재일조선인들의 삶이 참으로 신산했겠군요."라고 한마디 던진 적이 있다. 당시 내 얘길 듣던 교수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기는 듯 눈을 아래로 내려 깔고 있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런 일이 있기까지 나 자신은 재일조선인의 삶에 대해 별반 관심을 가지거나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또 몇 해 전에는 〈재〉일한문화교류기금과 함께 한일대학생 교류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일본 측의 제안으로 프로그램 내용에 한일 간 역사 인식의 차이에 대한 양국 대학생들의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행사 직전에 양국 관계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토론회가 당초와 다르게 축소되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토론회도 결국에는 상호 간 역사 인식의 차이만 확인할 뿐 인식의 차이를 좁히는 일은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애플TV+에서 방영되는 '파친코'라는 드라마의 세계적인 반향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다. BTS와 영화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K-콘텐츠의 연이은 성공으로 한국의 문화와 소프트파워가 그 어느 때보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 전후 유태인들의 역사가 세계인들에게 알려졌던 방식처럼 '파친코'라는 드라마가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근현대사를 재인식시킬 수 있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