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송상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검수완박 법안은 위헌…헌법은 검사 수사권한을 전제로 구성"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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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1 07:47  |  수정 2022-05-11 08:03  |  발행일 2022-05-11 제14면

송상현
최근 송진우 선생의 일대기인 '독립을 향한 집념'을 펴낸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은 "항일독립운동사와 해방전후사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며 "새 정부가 역사를 바로잡는데 앞장서기 바란다"고 출간 취지를 밝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에서 정치인, 교육자,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암살된 우파 정치인인 고하(古下) 송진우(1890~1945) 선생의 손자인 송상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호주 멜버른대 등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한국법을 가르쳤다. 한국인 최초로 뉴욕대 법대 석좌교수로 임명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사법기구 수장을 역임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초대 재판관 ·재판소장으로 12년간 일하며 국제형사정의를 통한 세계평화 구현의 최후 보루 역할을 다한 것. 법조계의 최고 원로인 송 교수를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나 '정권 이양기' 대한민국을 혼돈으로 밀어 넣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등에 대해 물었다.

▶나라를 뒤흔든 '검수완박'입법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절차나 내용상 너무 지나치고 무리하다. 또한 급하게 억지로 한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검찰의 수사권을 전부 없애는 입법례가 별로 없다. 정책의 문제이므로 공청회도 하고 많은 이해관계자를 소집해 논의한 다음 결정지었어야 한다. 헌법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생각한다. 헌법은 검사가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구성되어 있다. 헌법적인 전제를 무시하고 있으므로 그 부분을 헌재가 위헌 판결할 것으로 본다. 헌법재판소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이 많지만 사태를 본질적으로 보는 법률가라면 위헌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문재인 대통령 사위 취업 특혜 의혹 등의 검찰 수사도 물 건너가나.

"해석상 이미 수사해서 손을 댄 것은 계속 검찰이 사건을 종료할 것이다. 새로 개정된 법률 조항을 보면 뭘 어떻게 하라고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운영하는 사람의 해석 여지가 많다. 새로운 사건의 경우는 검찰이 자기 권한으로 수사해서 4개월내에 완결시키고, 이미 착수한 것은 해석상 4개월 지나도 종결 짓고 손을 털 수 있을 것이다."

▶위헌 판결이 나면 어떻게 되나.

"개정법률은 무효가 되고 헌재 판례 취지에 맞게 다시 입법해야 한다. 시간적으로 1년 넘게 걸릴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찬반 논란도 클 것이다. 헌재가 가부간 빨리 결단해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한 입법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므로 빨리 판단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헌재가 조속히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면 2년 후 국회의원 선거때 국민 의견이 반영될 것 같다.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려도 민주당이 국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 헌재판결의 취지대로 입법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큰 혼란이 예상된다. 결국 힘없는 일반 서민들만 피해를 볼 것이다."

▶제자인 서울대 법대 출신이 처음으로 대통령으로 취임했는데.

"이 정부는 어렵사리 선거에서 이겼다. 국민의 정권 교체 희망이 여론조사에서 누차 표명되었으므로,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인데 간신히 이겼다. 이거는 뭔가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 소속정당을 비롯하여 주변 시스템을 재점검해 봐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새 정부는 실패할 자유도 없는 정부이다. 제가 아는 윤 대통령은 털털하고 소박하고 정직한 인물이다. 아주 잘 해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어려움이 있으면 솔직히 국민에게 알려서 같이 걱정하자고 하는 방법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다. 87년 체제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이라고 믿는다."


제자 윤석열 대통령을 위한 조언
"전문성·경험있는 좋은 인물 발탁하되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들은 쓰지 말라
질 수 없는 선거였는데도 간신히 이겨
주변 시스템 재점검 경고로 생각해야"

조부 송진우 선생 일대기 재출간
"할아버지는 한반도 공산화 막아내고
대한민국 토대 닦은 선각자이자 정치가
이 책이 왜곡된 독립운동·해방전후史
바로잡는 역사적 자료 될 것으로 기대"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제안하면.

"좋은 사람을 발탁해서 써야 한다. 결국 인사가 만사, 성공의 요체이다. 전문성과 능력있고 현장 경험 많은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 능력이 있더라도 '세상이 나 중심으로 돌아 가야 된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쓰면 안 된다.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 중에는 스스로의 손에 흙을 묻히면서 앞장서는 사람이 적다. 또 어려운 사람에게 한 번도 다가가 본 일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은 통솔력, 실무집행력, 조직장악력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다."

▶최근 송진우 선생 일대기를 다시 펴냈는데.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중국이 왜곡하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특히 송진우 선생이 중심인물로서 활약하신 항일독립운동사와 해방전후사가 국내에서 많이 왜곡됐다. 또한 한반도의 분단 책임을 남한의 우파 정치 그룹에게 떠넘기고, 김일성은 독립운동가였다는 허위사실을 내세우면서 북한은 정통성 있는 건국을 했으나 남한에서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친일적인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등의 어불성설이 학교현장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스탈린의 괴뢰정부인 김일성정부 수립을 정통성 있는 건국으로 평가하고, 1948년 총선거를 통하여 대한민국을 세운 것을 단순한 정부수립으로 폄하하는 사관(史觀)은 시정되어야 한다. 고하 선생은 너무 일찍 암살당했지만 해방정국에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내고 당시의 지도자인 이승만 등과 협력하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한 선각자인 정치가이다. 이 책이 왜곡된 근현대의 항일독립운동사와 해방전후사를 바로잡는 역사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송진우 선생에 대한 기억이 나나.

"할아버지댁이 서울 비원 옆 원서동에 있었다. 그곳에선 내가 왕이었다. 할아버지와 감히 겸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거든. 네살부터 할아버지가 한글을 가르쳐 주셨고, 사서 3경을 외우게 하셨다. 나는 뜻도 모르고 암기하라고 하니까 외는 거다. 잘했다고 칭찬하시는 것이 좋았다. 할아버지가 국내 독립운동의 구심점에 서 계셨던 터라 일제 왜인들의 탄압과 감시가 심했고 어머니가 늘 입단속 시키던 게 떠오른다."

▶아시아인으로서 첫 국제사법기구 수장이 되었는데.

"2002년 신설기관에 갔기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국제형사재판소장으로 선출됐을 때 하늘이 주신 마지막 봉사의 기회로 여겼다."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푸틴은 어떻게 되나.

"현재 국제형사재판소 소추관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강대국의 최고 지도자를 전범으로 몰아서 당장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잡아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 다만 국제형사재판소가 발부한 구속영장은 공소시효가 없다. 조사 결과에 따라 종국에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처벌로 판결이 날 수도 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1972년 모교인 서울 법대에 교수로 갔다. 다들 내게 '금수저'라고 보는데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어 집 근처에 있는 어려운 노인들을 도왔다. 3년 정도 지나니 소문이 났는데 정치하려고 저런 쇼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투표권이 없는 어린 아이들을 돕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린이를 돕는 일을 50년간 했는데, 그중 유니세프에는 30년동안 봉사했다. 이제 나이도 먹고 할 만큼 했다 싶어 지난해 유니세프에 현금으로 1억원을 기부한 뒤 한국위원회 회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한국 유니세프의 세계적 위상이 대단하다. 원조를 받는 나라였는데 지금은 남을 도우면서 기부금액 순위가 세계 3등이다. 국민이 자부심을 크게 가지시길 바란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송상현 명예교수= △1941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대학원 졸 △미 코넬대 법학박사 △14회 고등고시 행정과(1962), 16회 고등고시 사법과(1963) 합격 △1972~2007년 서울대 법대 교수, 학장(현재 명예교수), 1989년 이래 미 플로리다대, 하버드대, 콜럼비아대 등 교수 △대학골프연맹 회장(1992) △2003~2015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및 소장 △2012~2021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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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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