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3고(高)' 시대의 따뜻함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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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6 06:40  |  수정 2022-10-06 06:51  |  발행일 2022-10-06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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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영기자<사회부>

식사 때 굴비를 천장에 매달고 밥 한술에 굴비 한 번 쳐다보는 괴이한 식사법을 애용한 김 아무개 이야기를 대다수는 들어봤을 것이다. 생선, 간장 등 사소한 것을 극단적으로 아끼는 인물을 과장한 이 이야기는 후대에 지독한 구두쇠, 혹은 '자린고비'의 일례로 널리 퍼졌다.

무언가를 소비하는데 인색한 사람을 한국에서 '자린고비'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태 '자린고비'라는 말을 긍정적인 단어로 받아들이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 사전에 나온 '자린고비' 뜻도 '인색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 적혀 있다.

더 이상 자린고비를 부정적인 뜻으로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고물가·고환율·고금리'를 겪으면서 서민들의 지갑은 자연스레 닫히고 있다. 과소비를 줄이는 '무지출 챌린지' '짠테크'가 SNS를 통해 청년들에게 전파됐으며, 마트의 알뜰 상품, 떨이 제품에 관심이 높아지는 등 '현대판 자린고비'가 각양각색의 형태로 나오고 있다.

때아닌 '3고(高)' 시대지만, '나눔'을 실천한 대구의 한 식당을 만날 수 있었다. 대구 수성구의 A식당은 개업 25주년을 맞아 식당 일부 메뉴 가격을 낮춰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A식당 사장은 "손님들에게 '요즘 같은 상황에 한식을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짠한 마음도 들었다"며 고물가 시대를 이야기했다.

취재를 시작하니 곳곳에서 고물가 시대의 어려움을 나누고자 하는 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식당 메뉴 가격을 낮추진 못하더라도 '힘든 시기에 우리 가게에 시켜줘서 고맙다'며 작은 덤을 챙겨주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한 프랜차이즈 식당은 본사가 지시한 규정보다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 손님들과 어려운 시대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다.

지난 4일, 다시 만난 A식당 사장은 취재진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가격을 낮춘 것을 알게 된 손님들이 따뜻한 말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식당 사장이 선뜻 내민 따뜻한 정이 손님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서 다시 사장에게 돌아온 것이다.

고물가 속 따뜻함.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그렇기에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서로의 작은 나눔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힘든 '3고' 시대를 버틸 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남영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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