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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지음/민음사/312쪽/1만5천원 |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에 대한 SNS 팔로우를 취소(cancel)한다는 의미다. 특히 유명인이나 공인이 논란이 되는 행동 또는 발언을 했을 때 해당 인물의 SNS 팔로우를 취소하는 방식으로 자주 나타난다.
소설가 김혜진의 신작 '경청'은 '캔슬 컬처'로 인해 '취소'당해 버린 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자신의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얘기해 오던 주제라 할 수 있는 '타인을 향한 이해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결을 같이한다. 하지만 그 시선은 작가의 기존 작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어떤 사람에 대해 빠른 판단을 해버리고 '열린 결말'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을 상대로 이야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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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인 임해수는 30대 후반의 심리 상담 전문가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확신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신뢰받는 상담사였던 그의 일상은 온데간데없다. 그는 모든 모욕을 받아내고 있다. 해수는 대중의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 뒤로 퇴사 통보, 이별 등이 이어졌다. 그는 일과 삶의 세계로부터 모두 밀려나 버렸다. 아니, 추방당했다.
세상과의 거리가 멀어져 버린 해수는 혼란에 잠겨 매일 밤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자신에게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며, 진정한 뉘우침을 강요하는 이들을 향한다. 이 편지는 미묘하다. 어떨 땐 사과 같다가도 다시 보면 항의하는 느낌도 든다. 후회하는 거 같다가도 변명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해수는 편지를 계속 쓰지만 어떤 것도 완성하지 못한다. 폐기되는 편지만 계속 생겨날 뿐이다. 해수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연민과 자기합리화만 무한 반복한다.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한 편지를 쓰는 반복하는 시간 외에 산책이 일과의 전부인 해수는 길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한다. 분명 굶주려 보이는 고양이지만, 어딘가 아픈 곳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고양이는 해수를 경계한다. 고양이를 살펴보는 해수는 한 아이와 만나게 된다. 이 아이는 이 고양이의 이름은 '순무'고, 순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해수에게 이야기한다. 해수는 경계하면서 좀처럼 구조되지 않으려는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상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와도 조금씩 가까워진다. 해수에게 이 시간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시간이다. 해수는 더욱더 고양이 구조에 몰입하는데 이는 마치 갈 곳을 잃고 그냥 가라앉아 버리는 자기 자신을 구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수의 일상에도 어느 순간 변화가 생긴다. 그의 일상에서 편지 쓰는 시간은 줄어든다.
이 소설은 비난의 화살을 수없이 받아내고 있는 해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가 저지른 한순간의 잘못으로 인한 대가가 어떻게 치러지는지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소설에서 끊임없이 취하고 있는 관찰자의 관점은 우리가 그에 관한 판단을 과연 내리는 게 합당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선택일 수 있고, 때로는 뭔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말을 그녀는 삼킨다."(155쪽)
김혜진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치킨 런'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과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불과 나의 자서전'을 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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