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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업 객원논설위원 |
1775년 증기기관의 출현으로 시작된 제1차 기계혁명이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국가 중 하나인 대영제국을 형성한 것처럼 제3차 정보혁명으로 미국이 세계 중심국가의 위치를 공고히 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세계 패권 국가는 바뀐다. 그러면 지금 우리 눈앞에 닥친 4차 산업혁명의 주체는 누가 될까? 미국? 아니면 중국인가?
4차 산업혁명은 현재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를 필두로 여러 지능형 첨단제품으로 구현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임금과 부품 공급망 등 국내 생산 여건상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개발과 설계에 집중해온 반면, 제조는 중국과 한국, 대만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해온 것이다. 중국은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바탕으로 그동안 축적해온 설계기술에, 첨단 부품의 국산화에 이어 제조까지 전 공정의 중국화로 첨단제조업의 선두,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의 중심국가로 도약하려 한다. 이른바 '중국몽'이다. 결국 첨단제조업의 주도권을 다투는 미·중 두 강국의 싸움이 이제 불타오르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첨단제조업에 3천300억달러를 투자하는 '반도체·과학법'을 발표했다. 이 법은 국내 제조업 육성을 위해 자국산 특혜와 혁신적인 미국산의 생산 촉진이 핵심 내용이다. 이것은 미국의 '제조업 국가 복귀 선언'이다. 이어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사용한 차량에 보조금이 지급되고,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주된 골자다. 연 6천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 구매력으로 조달 물품을 사들이는 수정 미국산 구매법(Buy American Act)에 따라 반도체와 배터리 등 안보와 경제 회복에 필요한 제품인 경우 연방정부가 더 비싼 가격을 주고도 미국산을 사들이는 특혜조항이 신설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마치 통망에 걸린 물고기처럼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부터 올해 5월까지 미국 내 생산거점 확보를 위한 투자계획을 밝힌 글로벌 기업은 총 26개이고, 투자 규모도 총 2천734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Chip4 동맹(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소속인 일본·한국·대만, 유럽계인 독일·포르투갈·호주, 그리고 과거 적국이던 베트남 기업까지 포함돼 있다.
중국은 2021년 14차 5개년 발전계획에서 중소기업의 전문화 우위 향상을 위해 '전정특신(專精特新)' 즉 제조업 챔피언 기업의 육성을 제시했다. 전정특신이란 전문화, 정밀화, 특성화, 혁신성을 갖춘 기업을 의미한다. 2025년까지 중국을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시키려는 '중국 제조 2025'의 핵심 전략이다. 이들은 부품의 국산화율을 대폭 끌어올리고, 반도체와 전기차 등 10대 하이테크 산업의 선도 역할을 담당한다. 기술력 부족으로 외국 특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 즉 '차보즈' 문제 해결에도 선봉장이 될 것이다. 반도체, 생명공학, PC, SNS, 인공지능 등 세계 기술혁신의 역사를 이끈 GAFAM(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MS)을 비롯한 수많은 미국의 빅 테크들을 극복하려는 중국의 의지로 보인다. 이제 미국과 중국은 기술우위와 제조 주도권 탈환을 위한 국가 전 방위적 경쟁에 돌입된 상태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 TSMC가 소재한 대만을 포함해 동아시아 국가 안보전략과 동맹 중심의 경제협력, 나아가 탈 세계화까지 미국의 모든 세계 전략이 이 싸움에 집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Alliance First'의 미국과 세계 반도체의 4분의 1을 쓰는 중국 사이에서 '친중결미'의 길을 가야만 하는 한국, 하지만 이 생존의 길 앞에는 원모심려(遠謀深慮)의 정교함과 때로는 대담함을 가지고 넘어야 할 수많은 산들이 있을 것이다.
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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