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의 데자뷔

  • 이재훈 아이스퀘어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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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25  |  수정 2022-11-25 06:42  |  발행일 2022-11-25 제22면
사고날때마다 희생양 찾아

책임묻는 땜질식 처방이나

단편적 조치가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한

시스템적 차원의 접근 필요

[경제와 세상]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의 데자뷔
이재훈 아이스퀘어벤처스 대표

2022년 10월29~30일. 또다시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세계 10대 경제강국, 전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 열풍의 주인공, 대한민국의 그 밝고 화려한 외모 뒤에 가려진 어둡고 부실하고, 불안전한 민낯을 전 세계가 목도했다. '과밀사회' '위험사회' 대한민국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천재지변이나 대형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집단 간 패싸움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닌데 꽃다운 158명의 젊은이들이 피지도 못한 채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뒤엉키면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 사회에서 비슷한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어렵다 보니 재난의 원인을 일부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경향 탓이다. 즉 희생양 찾기에 몰두하며 시간이 지나 그 일이 유야무야되면서 결국 제대로 된 책임소재를 찾지 못한 채 정치 공방만 벌이다 보니 대형 참사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없어 재난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예외 없이 우리는 먼저 책임질 대상부터 찾는 마치 세월호의 데자뷔(deja vu·기시감(旣視感))를 보는 것 같다. 물론 대통령보다 늦게 보고받은 서울경찰청장과 늦장 대응한 용산서장 등은 정상이 아니다. 책임 소재를 따지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세월호 이후 해경을 해체한 것처럼 경찰을 해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당 측이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에 비해 비교적 방어를 잘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흡사하게 야당은 진영논리에 입각해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재난의 정치화'가 재연되는 조짐을 보이는데 이것도 아니다.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는 섣부른 비난과 처벌보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에 기반한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의 주요 배경은 코로나19 압박에서 벗어나 3년간 억눌렸던 청춘의 폭발이지만 가장 막중한 책임은 10만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안전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경찰과 구청 및 서울교통공사 등 행정적 책임이다. 특히 생때같은 젊은이를 보호하지 못한 경찰서장과 구청장의 직업윤리 부재와 핼러윈을 먹고 마시는 파티로 변질되도록 기성세대가 부추긴 한탕주의와 불법 건축물과 도로 점유 등 직무유기이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의 핵심은 일부 개개인의 인격에 기인한 인재(man-failure)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 에러(system-error)다. 서울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늘 목도하듯이 우리 사회는 고도의 '연결성'과 '복잡성'을 특징으로 하는 과밀사회여서 안전 문제가 상존한다. 초기의 사고를 완충할 수 있는 느슨한 부분들이 없어 사소한 발단에서 시작한 작은 사고조차 엄청나게 증폭되어 걷잡을 수 없는 대참사로 이어지곤 한다.

'시스템 사고'를 막는 해결책은 시스템 전체의 연결을 느슨하게 만들고, 이른바 여분(slack)의 공간이나 우회로를 설치하는 것이다. 물론 이 사소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시스템 전체에 걸친 작업이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안전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과 불편을 감내해야 얻을 수 있는 가치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사고가 날 때마다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묻는 땜질식 처방이나 단편적 조치가 아니라 전체적 맥락을 고려한 종합적인 시스템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이재훈 아이스퀘어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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