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김미령의 '캉캉'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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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5  |  수정 2022-12-05 06:51  |  발행일 2022-12-05 제25면

두꺼운 장막, 열 겹의 주름 밖에 내가 서 있다

파도치는 거리, 언젠가 이 바깥을 모두 걸을 때 너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도는 것을 멈출 수 없고

멈추는 방법을 우리는 모르고

너의 음흉이 나의 어리석음을 칭칭 감으며 비대해진 솜사탕처럼

치마를 벗기면 너는 얼마나 줄어들까 주름을 쫙 펴면 얼마나 넓어질까 도열한 풀들이 빽빽하게 막아선 것 잠깐 나왔다 들어가며 숨바꼭질하는 것 누르면 까르르 웃기만 하는 아이가 들어있고 뉘여 말리면 비쩍 마른 엉덩이들이 뿔뿔이 달아난다

무릎 위로 일렁이는 흰 건반들

밤새 입안에 쇠붙이가 많이 쌓이고 새를 날린 아침 나무처럼 너는 헐렁해져서 (김미령의 '캉캉')



물랭루주의 명물인 사교춤 캉캉에 대한 탐구가 정밀한 묘사의 힘을 얻어 캉캉 이상이 되고 있다. 캉캉은 여기서 발랄하고 경쾌하면서 낙천주의자이다. 춤이 의태로부터 동력을 받아서 캉캉이고 만다. 캉캉을 출 때의 주름 옷이 파도로 묘사된 것도 캉캉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준다. 캉캉 혹은 춤의 정체성을 따지기보다 오직 캉캉 혹은 춤의 이미지만으로 캉캉이면서 춤이다. 캉캉 외에 보여 줄 것이 없다는 캉캉이다. 사교춤이기에 나를 드러내는 춤이다. 나는 까르르 잘 웃는 사람이다, 내 몸에는 흰 건반이 있어 언제나 음악에 가깝다, 새를 날린 아침 나무처럼 나는 싱그러움이라는 춤, 캉캉의 명암에는 오펜바흐의 오페라의 이름처럼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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