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서울 중심의 보편사에 대항하는 방법, 그 출발은 기록

  • 전가경 도서출판 사월의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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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5  |  수정 2022-12-05 06:51  |  발행일 2022-12-05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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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경 (도서출판 사월의눈 대표)

지난주, '기록'이라는 교집합을 공유하면서도 공기관과 민간, 체계적 관리와 주관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상충하는 두 개의 몸짓을 목격했다.

목요일 대구예술발전소 3층.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이자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의 협조를 얻어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 수장고에서의 자료 열람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곳엔 대구 연극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연극인 고(故) 이필동(1944~2008) 선생의 기증품이 보관되어 있는데, 내가 열람한 것은 그가 생전 모았다는 잡지 창간호였다. 약 1m 폭, 여섯 칸 높이의 책장 하나는 이필동 선생이 수집한 잡지들로 빼곡했다. 대략 200~300여 종에 가깝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양손에 낀 라텍스 장갑은 30~60년 세월의 먼지로 금세 오염되었다. 디자인 저술가인 나는 그곳에서 비단 시각디자인계 안에서 호출되는 '디자인 잘 된' 익숙한 잡지뿐만 아니라 대구 기반 지역 잡지에서부터 방송연예 잡지에 이르기까지 한 지역과 시대의 당돌함과 민낯을 다채롭게 조명하는 지면들을 만났다. 이필동 연극인이 어떤 기준으로 잡지 창간호를 수집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이 잡지 컬렉션은 한 개인의 사사로운 취미 정도로 치부하면 그만 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디자인 관점에서 잡지를 연구하는 나에게 이 잡지 컬렉션은 서울 중심의 보편사로부터의 해방 가능성을 일깨워줬다. 특정 역사기술에서 반복적으로 호명된 잡지는 그 자체로서의 가치와 의미도 존재하지만, 서울이라는 출신지와 고학력 남성 지식인이라는 성분도 그 호명의 배경으로 작동했을 테다. 이필동 잡지 컬렉션은 보편사에 균열을 내는 성분으로서 지역 아카이브의 존재와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금요일 남산동 롤러카페. '도시공원 기록 활동: 01 공원의 미래'라는 이름의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롤러카페 이층에서는 서점 이층책방의 대표 최윤경 기획자와 사진책 전문서점 낫온리북스의 대표 장혜진 사진가가 올해 가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두 창작자는 '도시공원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의기투합하여 대구의 공원을 기록 중이었고 그 첫 사례가 '달성공원'이었다. 아담하면서도 세련되게 풀어낸 전시에서 기록의 방식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카이브도, 기록도 동시대적 해석이라는 햇볕을 쬐지 못하면 '사어'일 수밖에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이다. 지역 아카이브나 기록을 말할 때 '지역'은 하나의 함정인 경우가 다반사다. 지역을 반복적으로 강조할수록 다른 지역과의 연결고리뿐만 아니라 확장성을 상실하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란 문제가 대두된다. 이 작은 전시는 국내의 누락된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대구의 공원을 '도시공원' 관점에서 바라보고, 사진과 소설(정지돈, 이하진 작가 참여)이라는 매체를 경유하여, 기획자와 창작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든 공동의 산물이었다. 그곳엔 지역성에 대한 강박증 이전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란 화두가 자리해 있었다.

이틀 동안 방문한 이 두 장소는 '지역 기록'이라는 화제를 밑바탕으로 공기관 차원의 수집과 보관 및 민간 차원의 주관적 기록 방식이 어떻게 상호보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였다. 역사는 하나의 줄기로만 수렴되지 않는다. 누락된 지역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지도에 등장해야 한다면, 기록이라는 출발과 동시에 그 방식에 대한 기술이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도시공원 기록 전시는 12월7일까지. 꼭 방문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전가경 (도서출판 사월의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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