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바보상자를 위한 변론

  •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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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5  |  수정 2022-12-05 06:49  |  발행일 2022-12-05 제26면
시청자 의견 대변·방송 감시

올초부터 시청자위원회 활동

지식 제공과 스트레스 해소

가족 간 대화도 복원하는 등

TV 잘만 활용하면 만물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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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TV는 억울하다. '바보상자'라 부르며 호시탐탐 퇴출시키려 한다. 눈이 나빠지는 것쯤은 참을 수 있지만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면 차원이 다르다. TV 때문에 가족 간 대화가 줄어드는 것은 몰라도 가족 공동체의 붕괴에까지 이른다면 절대 받아들이기 어렵다.

10년 전에 살던 낡은 아파트를 수리하면서 당시 유행에 따라 거실을 서재로 만들었다. TV를 시청하는 시간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취지였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덤으로 공부도 잘하게 될 거라는 기대도 한몫하였는데, 두 아들 모두 재수한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TV는 사라졌지만 첨단화된 휴대폰이 1인용 TV가 되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각자의 일정 때문에 함께 모여 식사하는 시간도 여의치 않아졌다. 그나마 TV를 보기 위해 잠시나마 거실에 모이던 가족들은 각자의 방에서 휴대폰으로 영화나 유튜브를 보면서 더 만나기 힘들어졌다.

10년 만에 TV를 샀다. 올해 초 'SBS 시청자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기 연예인들의 고문변호사를 한다거나 여러 차례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다른 변호사들도 많이 경험하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서울고등법원 언론전담재판부의 조정위원이나 대한상사중재원의 엔터테인먼트분과 중재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변호사로서는 아주 드물게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경력이 높게 평가받은 것 같다.

시청자위원회는 시청자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방송법에 따라 반드시 설치하여야 하는 법적 기구이며, 위원들은 다양한 시청자의 의견을 대변하고 방송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활동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위원을 추천하는 단체와 요건에 대하여 방송통신위원회규칙에서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위원들은 보도, 드라마, 예능, 교양, 다큐 등 맡은 분야의 방송을 시청한 후 방송편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시정을 요구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세월이 바뀌어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때문에 법전이 필요 없는 변호사는 있을 수 있어도, TV를 안 보는 시청자위원장은 왠지 어불성설 같아 연초에 큼지막한 TV 한 대를 거실에 들여놓았다. 10년 만에 만난 TV는 옛날의 바보상자가 아니었다. 드라마도 과거의 막장에서 벗어나 재미는 물론이고 소재가 다양해졌다.

골프의 경우 경기 중계는 물론이고 레슨도 TV에서 다 해 준다. 코로나로 인하여 여행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국내외 관광지를 눈과 마음으로 찾아다니며 달래준다. 한 지붕 두 가족마냥 살던 아들 녀석들도 지나던 길에 잠시 소파에 앉아 TV를 함께 본다. 자연스럽게 학교 이야기나 관심 사항에 관한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TV는 죄가 없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고,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 TV도 잘만 활용하면 바보상자가 아니라 만물상자가 될 수 있다. 적정한 시간과 프로그램을 선택한다면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은 물론이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더하여 가족 간의 대화도 복원되니 함부로 TV를 바보상자라 비난하지 말라.

내일은 온 가족이 새벽에 일어나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할 계획이다. 월드컵 축구 시청으로 마냥 행복하기만 한 요즘 고민은 딱 두 가지이다. 축구 관람할 때 치킨, 피자보다 맛 좋은 간식이 무엇일까와 축구로 하나 되는 국민을 분열시키려 사력을 다하며 똥 볼 차대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하면 뉴스에서 보지 않을 수 있을까이다.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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