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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열린 여·야·정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마친 뒤 밖으로 나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여야가 정기국회 종료인인 9일에도 내년도 예산안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국회 선진화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회기 내 예산안 처리가 사실상 불발됐다.
본회의 소집 권한을 가지고 있는 김진표 국회의장도 정부안이나 민주당안을 처리할 수 없고, 예산안을 처리하기 전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만 단독으로 상정할 수 없다는 뜻도 밝히면서 이날 본회의는 무산되는 분위기다.
◆ 여야 원내대표 모두 정기국회 내 처리 불가능 인정
이날 여야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참여하는 '2+2 협의체', 의장 주재 회동,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여·야·정 협의 등을 통해 담판을 시도했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예산안 감액 규모를 두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날 오후 여야 원내대표들이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회기 내 예산안 처리가 어려울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도 예산안 법정 시한인 12월2일 지키지 못한 적은 있어도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9일은 넘긴 적이 없는데 오늘은 사실상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예산안이 큰 줄기가 합의돼도 소위 증감에 대한 시트(예산명세서)를 정리하는데 12시간 이상 시간이 필요한데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 한 상황"이라며 "국정에 무한 책임을 지는 여당으로서 내년도 예산안을 법정 기한을 넘겨 정기국회 마지막까지도 통과시키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즉 여야가 합의를 이룬다 해도 정기국회 회기 내 예산안 처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고수해 본회의를 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 원안 또는 민주당 단독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의를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후 기자 간담회에서 "김 의장은 예산안 처리가 우선이고, 이 장관 해임 건의안 부분은 상정해서 처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라며 "의장이 끝까지 불가능하다고 공식적 선언을 하면 매우 유감이지만, 여야 협상을 통해 예산안 타결을 짓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금 국회에는 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있는 것이고 예산심사를 통해 여야가 합의해 수정안을 처리하는 절차를 밟는다"면서 "수정안을 처리해야 할 시점은 오늘 저녁 자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산안 수정작업이 여야가 합의했다고 바로 되는게 아니라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 복잡하기에 최소 시간이 10시간에서 11시간 가량 소요된다"며 "그런데 아직도 쟁점이 남아있는 등 현실적으로 오늘 내에 정기국회 처리라고 하는 목표는 지금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박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정기국회 안에 예산안 처리하겠단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오늘 합의한 예산안은 현실적으로 처리가 어렵지만,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올라가 있으니 여기에 민주당이 마련한 수정안을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정기국회 내에 처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기국회 말미에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의 협상 줄다리기가 있어도 이렇게까지 현격한 입장차를 갖고 시간을 끌었던 적도 없을뿐더러 정부·여당이 예산안을 저렇게 소극적 미온적으로 회피한 적 없었다"고 예산안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여당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 법인세 인하에 합의 이르지 못해
이날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가 막판까지 합의에 실패한 부분은 윤석열 정부의 세제개편안 주요 내용 중 하나인 '법인세 인하'다. 정부·여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의장 주재 회동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중 이 문제(법인세율 인하)가 타결되면 예산안도 수월하게 통과될 수 있다"면서 "김 의장이 중재안(2년 시행유예)도 냈지만, 민주당은 최고세율을 낮추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법인세 비중이 7위에 달한다"며 "국민이 법인세 인하를 대선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를 선택한 만큼 야당의 대승적 결단을 요청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산안 감액 규모를 놓고도 국민의힘은 마지노선을 2조6천억원으로 설정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민주당은 '초부자감세 폐기'로 요약되는 예산안 심사 기조를 분명히 하며 맞서고 있다. 특히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자는 정부·여당안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여당안의 시행을 2년 유예하자는 김 의장의 중재안도 거부한 상태다.
결국 여야는 법인세 인하와 관련해 마지막 타결을 시도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2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도 연기됐다. 이날 여야정 협의에 참여했던 추 장관은 "정부도 양보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하는 등 최선을 다했는데 야당 입장이 완강하다"며 "이제는 국회의 시간"이라고 했다.
다만 여야 지도부는 10일 또는 11일 본회의 개최를 목표로 물밑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해임건의안은 보고 뒤 72시간 내 처리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기 때문에 11일 오후 2시까지 반드시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져야 한다.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서는 본회의를 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막판 합의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오늘 자정부터는 임시회가 시작되고 특히 이 장관 해임안이 일요일(11일) 오후 2시까지 (처리가) 시한으로 돼 있기에 그 사이에 여야가 합의 타결하고 이 장관 해임안도 처리하는 게 당연한 상식적인 수순"이라면서도 "의장이 최종적으로 본회의 안 열겠다고 밝힌다면 여당과 함께 남은 예산안 쟁점 해소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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