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 핵직구]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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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8  |  수정 2023-01-18 06:50  |  발행일 2023-01-18 제27면

[돌직구 핵직구]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이재동 변호사

최근 한 판결문이 화제가 되었다. 판결의 결론인 주문(主文)에서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라는 파격적인 문장을 덧붙인 것이다. 여기에다 이유에서 그림을 사용하는 등 청각장애인인 원고가 이해하기 쉽게 많은 배려를 하였다. 엄격한 형식이 요구되는 판결문에서 이런 구어체의 문장을 사용한 것을 법원이 국민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으로 보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사건은 원고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특별히 당사자가 이해하고 납득하기 쉬운 판결문을 부탁하였고 법원이 많은 정성을 들여 응답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의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은 우수(右手)로 피해자의 좌협(左頰)을 타(打)하여…'와 같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많다. 우리 법원도 어려운 법률용어를 친숙한 우리말로 바꾸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한계가 엄연한 것 같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라는 말보다는 '원고가 졌습니다'라는 말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나는 앞에 붙인 '안타깝지만'이라는 말이 더 눈에 띄었다. 왜 안타깝다는 표현을 굳이 썼을까? 재판에 진 원고의 고통에 대한 위로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법적 논리에 따라 내린 결론이 자신이 가진 정의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고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 재판 잘하기로 평판이 자자했던 한 부장판사께서 강의에서 한 말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아있다. "판사들 중에 재판에서 A가 억울한 사람이지만 법리상 상대방인 B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서 괴롭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원인은 첫째로 그 판사의 정의관념이 잘못되어 억울하지 않은 사람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고, 둘째로 법리에 어두워서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첫째의 경우가 더 많다.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지 못하는 법은 없다."

우리 헌법에서는 판사는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률은 객관적이지만 양심은 제각각이다. 최근에 말이 많은 SK 최태원 회장의 이혼 판결의 결론은 엄격한 법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판사 개인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관념이 작용한 것이다. 작은 기업의 경우에는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만 다수 주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거대기업의 경우에는 지배주주의 변동을 가져오는 재산분할은 허용되지 않는다거나, 딴 살림을 차려 혼외자까지 두었음에도 위자료의 액수를 10조원 재산을 가진 사람을 10억원 재산을 가진 사람과 같이 취급한 것은 법률이 그래서가 아니라 판사 개인의 양심이 그런 것이다. 이 양심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소질, 성장 환경이나 개인적인 경험 등이 모두 어울려 만들어진다.

법사회학자 외젠 에를리히의 '결국 정의를 보장하는 것은 법관의 인격밖에 없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판사의 양심이 일반 시민의 양심과 다르면 모두가 우울해진다. 미국의 연방대법관 카도조는 "판사로서 내 임무는 나의 희망과 확신과 철학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선남선녀의 희망과 확신과 철학을 법 안에서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시인 월트 휘트먼은 이를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추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법리를 다듬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시대정신(Zeitgeist)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이래서 법관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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