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
얼마 전 입춘이 지났다. 농촌에서는 입춘을 새해로 보고 농사지을 준비를 한다. 입춘 풍습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것이 입춘방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사람들은 이 여덟 글자를 벽이나 문짝, 문지방에 써 붙이고는 한 해 동안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한다. 이 바람이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당면한 현실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켜면 기후변화에 직면하여 인류가 겪고 있는 심각한 사건이 수시로 방영된다. 몇 가지 사례를 들면, 호주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대형화재로 5천만 에이커가 불탔고 최소 34명이 죽었으며 6천 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작년 여름 이웃 나라 중국 중남부에서는 기록적인 홍수로 5천50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극 온도도 꾸준히 상승하여 여름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 북극 빙하의 융해는 해수면의 상승을 초래하여 저지대 국가와 도시를 침몰시킬 위험이 있다. 실제로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와 키리바시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해버렸다. 지구는 이미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졌다는 과학자들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기후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국제사회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이 협약은 200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규모를 1990년 수준으로 안정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을 뿐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후 최악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합의가 도출되었는데, 2016년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이다.
파리협정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전 지구적 합의문서다. 이 문서는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 아래로 억제하고, 1.5℃를 넘지 않는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협정에 가입하였으며,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의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하였다. 과연 모든 나라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여 인류는 안전한 지구에서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호모 사피엔스가 제일 골칫덩이 동물종일 것이다. (인간은 매일 막대한 양의 음식과 물건을 먹고 싸고 버리고 태우면서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만일 지금처럼 대량소비와 물질문명 위주의 삶을 지속하면 기후변화의 가속화로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 현실 상황이 이토록 엄중한데도 우리는 도무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기후 위기는 인류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위기의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기보다는 개인과 국가별로 나름의 해결책을 찾고 각자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통해 지구를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세계 각국은 탄소 농업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 농업이란 대기 중의 탄소를 토양과 작물 뿌리, 나무 등에 격리하고, 땅으로 되돌리는 농법을 말한다. 지구 토양 속에는 약 2조5천억t의 탄소가 매립돼 있는데, 이는 공기 중에 떠 있는 탄소량의 3배가 넘는 수치다. 탄소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흙의 기능을 활성화하여 탄소배출을 최소화하고 저장 능력을 극대화하여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한마디로 탄소 농업이란 탄소를 흙에 가두는 농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농법은 경작지의 규모를 묻지 않고 탄소배출을 줄임으로써 지구환경을 보전할 수 있어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일반적인 농산물 재배 방법으로 관행농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 농법은 화학비료, 농약 및 고도의 기계화 작업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관행농업을 버리고 탄소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찍이 일본의 농부이자 농학자 쓰노 유칸도는 '소농-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란 책에서 대규모 상업농 중심의 현대적 농업의 문제점을 비판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누가 지구를 지켜왔으며, 지구의 미래 생태계는 누가 지킬 것인가. 바로 소농이다. 작은 땅에서 기계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이웃과 협력하면서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때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연농법이 현실 농정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소농·대농을 떠나 농업생산력을 확대하여 경제적 이익을 내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탄소 농업에 그 해답이 있다.
탄소 농업의 핵심은 기계로 땅을 갈아엎지 않고, 풀을 뽑지 않으며,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이다. 경운을 하면 땅을 갈아엎는 순간에는 흙이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이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경운하지 않은 초원의 토양과 비교해보면, 경작지는 약 50% 정도의 탄소밖에 저장하지 못한다. 결국 경작 과정에서 탄소의 절반이 사라지는 셈이다. 경운 중심의 관행농법에서 벗어나 탄소 농법으로 전환하면, 대기 중으로 배출된 탄소를 흙이 다시 흡수하여 저장할 수 있다. 경운을 하지 않고 탄소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애써 땅을 갈거나 풀을 뽑지 않고 뿌리는 그대로 둔 채 작물을 심고 가꾸면 그만이다. 탄소 농업은 농가의 일손을 덜 뿐만 아니라 토양에 서식하는 다양한 미생물을 보호하는 등 자연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농법이다.
그리고 탄소 농업에서는 화학비료를 뿌리는 대신 일반작물의 생육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피복작물을 함께 심어 땅의 힘을 키운다. 일반작물과 피복작물의 줄기와 잎은 베어 땅을 덮어주고, 뿌리는 뽑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 작물의 뿌리가 썩으면서 물을 원활하게 흡수할 뿐 아니라 산소의 흐름도 개선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게다가 땅을 덮어준 작물의 줄기·잎과 뿌리가 썩어 거름이 되니 해를 거듭할수록 작물의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풍부한 토양으로 바뀐다. 이렇게 하여 토양에 탄소를 저장하고 유기물의 양이 많아지면, 농업생산량이 늘어나 자연스레 농가 소득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과 지구환경에 심각한 위협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지금 당장 도시의 삶을 포기하거나 공장의 가동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의 문명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기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바로 탄소 농업이다. 탄소 농업으로 지구온난화를 멈추고 기후 위기에 빠진 지구를 살리자. 탄소 농업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