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법정의 경고

  • 노진실
  • |
  • 입력 2023-02-27  |  수정 2023-02-27 07:00  |  발행일 2023-02-27 제26면

[하프타임] 법정의 경고
노진실 체육주간부기자

얼마 전 기자는 한 법정의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오랜 습관처럼, 법원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취재와는 별개로 한 번씩 재판을 보러 갔다.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법정의 경고'는 무뎌진 양심, 느슨해진 삶에 다시 긴장감을 준다. 일종의 죽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법정은 홀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재판들을 보며 생각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다는 '성선설'과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 그 두 학설로 인간을 일반화하기 힘들다는 생각 말이다. 개개의 인간들에겐 '선택'이라는 변수가 있으니까. 우리 앞에는 매 순간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다. 원래 착해서 바른 선택만 하고, 원래 악해서 나쁜 선택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선택에는 인간의 본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본성을 넘어서게 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라 믿는다.

그날 기자가 본 재판은 어떤 사고와 관련된 것이었다.

지난해, 보수작업 중이던 기계식 주차장에서 승용차가 추락해 운전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나와 내 지인들, 혹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그야말로 '일상 속의 사고'였다. 해당 사고의 피고인은 여럿이었다. 사고 발생 현장에서는 '총체적 안전불감증' 의혹이 제기됐으니, 재판에 넘겨진 이도 여러 명일 수밖에 없었다.

법정에서는 취재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까지 더해 사고 당시의 부실했던 안전조치 정황 등이 재확인됐다. 그제서야 그날 사고와 관련된 조각들이 맞춰지는 듯했다.

피고인들에겐 각각의 처벌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최소한의 안전 조치만 취했더라도 피해자가 귀중한 생명을 잃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피해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회복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그날 사고는 과실들이 중첩돼 발생한 것이었다. 피고인들이 반성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많은 안타까움이 남는다. 사고 발생 전 누구 하나라도 안전조치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선택을 했다면, 적어도 최악의 사고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사고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경제적 효율성보다 인간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선택에 대한 의지를 놓아선 안 된다는 것. 이것이 그날 기자가 들은 법정의 경고였다.

경고를 새겨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비극을 또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진실 체육주간부기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