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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
시인 한이로. '교도소 장기복역수'인 그는 올초 영남일보 문학상(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문단과 독자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 법무부, 검찰까지 관심을 보였다. 아직도 유튜브와 SNS에서 그의 시는 뜨겁다. 기자가 알고 지내는 작가를 통해 최근에는 출판사와도 연결됐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오늘 기어코 다시 끄집어내 읽는다. 자필로 보낸 그의 당선 소감 원본은 기자의 책상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다. 요란했던 잔치가 끝난 뒤에 읽는 '철 지난 소감'. 당시의 감흥이 여전하다. 행간과 행간 사이는 꽤 묵직하다. 단어와 문장은 함축적이다. 소감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읽힌다.
'(전략) 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 그럼에도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듯.(중략) 고마움과 미안함은 이따금 동의어로 쓰인다.(중략) 그렇게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걸었다. 걷는 것은 견디는 것과 닮았다. 작품은 삶과 같아서 언제나 미완일 뿐, 오늘의 뿌듯함이 내일의 부끄럼이 되곤 한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시간처럼 이 또한 성근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빛나는 밧줄을 길잡이 삼아 환한 저 너머로 다시 걷는다'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 속에서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을 그가 다시 떠오른다. 지난해 12월28일, 기자는 그를 처음 만났다. 교도소 접견실 철창을 사이에 둔 채였다. 첫인상은 뜻밖이었다. 고백하건대 스님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안경 너머의 눈은 심연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쌍꺼풀인지 무엇인지 모를 선이 눈 아래 선명했다. 말은 많지 않았다. 당선 소식에 들떠 있지도 않았다.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며 고뇌하는 '시인'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죄수복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헛도는 듯했다.
그는 시로 속죄하고 있었다. '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이었지만,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것이 때론 '미안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고마워'했다. 그는 두 말을 '동의어'로 생각하며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걸으며 견뎠다'.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접견 중 그가 물었다. 기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배석한 교도관들도 침묵했다. 질문을 끝내며 그는 기자와 교도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눈빛이 절실했다. '시상식에 꼭 참석'하고 싶은 그 간절함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 속에 출렁거렸다. 접견 이후 그는 기자에게 두 번의 자필 편지를 보내왔다. '감사하다'는 단어가 자주 보였다. 당선 소식에 모친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고, 부친은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자랑스럽다는 말을 평생 처음 들어봤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직접 (가서) 수상하면 안 될까요?" 끝내 그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시인 한이로를 보며 문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단순히 읽고 쓰고 공감만 하는 장르는 아닌 듯하다. 문학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지난날을 속죄하게 한다. 읽고 쓰면서 병든 자아를 치유하기도 하는 것이 문학인 듯하다. 그것을 한이로 시인은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그는 두 차례의 편지에서 사회로 복귀하면 기자를 꼭 찾아오겠다고 전했다.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 약속이 언제 지켜질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절대 잊지는 못할 듯하다. 그는 기자와 동갑이다.백승운 문화부장
그의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오늘 기어코 다시 끄집어내 읽는다. 자필로 보낸 그의 당선 소감 원본은 기자의 책상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다. 요란했던 잔치가 끝난 뒤에 읽는 '철 지난 소감'. 당시의 감흥이 여전하다. 행간과 행간 사이는 꽤 묵직하다. 단어와 문장은 함축적이다. 소감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읽힌다.
'(전략) 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 그럼에도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듯.(중략) 고마움과 미안함은 이따금 동의어로 쓰인다.(중략) 그렇게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걸었다. 걷는 것은 견디는 것과 닮았다. 작품은 삶과 같아서 언제나 미완일 뿐, 오늘의 뿌듯함이 내일의 부끄럼이 되곤 한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시간처럼 이 또한 성근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빛나는 밧줄을 길잡이 삼아 환한 저 너머로 다시 걷는다'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 속에서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을 그가 다시 떠오른다. 지난해 12월28일, 기자는 그를 처음 만났다. 교도소 접견실 철창을 사이에 둔 채였다. 첫인상은 뜻밖이었다. 고백하건대 스님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안경 너머의 눈은 심연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쌍꺼풀인지 무엇인지 모를 선이 눈 아래 선명했다. 말은 많지 않았다. 당선 소식에 들떠 있지도 않았다.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며 고뇌하는 '시인'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죄수복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헛도는 듯했다.
그는 시로 속죄하고 있었다. '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이었지만,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것이 때론 '미안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고마워'했다. 그는 두 말을 '동의어'로 생각하며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걸으며 견뎠다'.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접견 중 그가 물었다. 기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배석한 교도관들도 침묵했다. 질문을 끝내며 그는 기자와 교도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눈빛이 절실했다. '시상식에 꼭 참석'하고 싶은 그 간절함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 속에 출렁거렸다. 접견 이후 그는 기자에게 두 번의 자필 편지를 보내왔다. '감사하다'는 단어가 자주 보였다. 당선 소식에 모친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고, 부친은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자랑스럽다는 말을 평생 처음 들어봤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직접 (가서) 수상하면 안 될까요?" 끝내 그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시인 한이로를 보며 문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단순히 읽고 쓰고 공감만 하는 장르는 아닌 듯하다. 문학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지난날을 속죄하게 한다. 읽고 쓰면서 병든 자아를 치유하기도 하는 것이 문학인 듯하다. 그것을 한이로 시인은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그는 두 차례의 편지에서 사회로 복귀하면 기자를 꼭 찾아오겠다고 전했다.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 약속이 언제 지켜질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절대 잊지는 못할 듯하다. 그는 기자와 동갑이다.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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