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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지음·눌와·2017·319면·2만원 |
이 책의 저자 유홍준은 일찍부터 전국의 문화재를 샅샅이 찾아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써내 명성을 떨쳤고,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을 지내 우리 지역과는 가까운 인물로서 나중에는 문화재청장까지 역임한 실력 있는 교수다.
'완당 평전'을 쓴 그는 추사 김정희에 대해 깊이 천착하며 많은 글을 써서 추사의 격을 한층 더 높여놓았다. 그는 우리나라의 '미(美)를 보는 눈'을 안목(眼目)이라고 말하며 우리나라의 미적 가치를 감별하는 눈이 뛰어난 역사 속의 인물들을 몇 명 드러낸 것이 이 책이다.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예술로 말할 것 같으면 추사 김정희를 능가할 예술가가 없는데, 이런 인물을 일찍이 알아본 동시대의 문인으로 유희진을 들고 있다. 그는 "원래 글씨의 묘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추사체의 본질이자 매력이라는 것이다. 이에 이어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환재 박규수도 추사의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과 함께 시대적 변화도 예측하는 큰 안목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큰 안목은 일찍이 김부식이 '삼국사기:백제본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을 평하며, "새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華而不侈)"고 한 말을 들고 있다. 유홍준은 사실상 이 말이 백제의 미학이고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의 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미술사에서 큰 안목을 가진 또 한 사람으로 한국의 서화사를 집대성한 위인으로 위창 오세창을 들고 있다. 위창은 당대의 예술가로 전서(篆書)에 뛰어난 서예가였으며, 미술계의 지도자로서 서화를 보는 안목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간송 전형필, 다산 박영철의 고서화 수집은 거의 다 위창의 안목과 지도 아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혜곡 최순우도 평생 박물관에 살면서 구체적인 유물을 통하여 한국 미학의 방향을 제시한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백자 달항아리' '부석사 무량수전' 같은 글은 매력적인 언어로 가치를 찾아낸 탁월한 안목을 가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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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문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사) 대구독서포럼 이사) |
추사의 가치를 알고 그의 작품 '세한도(歲寒圖)'를 찾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소전 손재형의 안목도 빠질 수 없다. 일본인 후지쓰카가 소장한 추사의 '세한도'를 찾아오기 위해 무려 두 달간 매일 그의 집에 문안 인사를 드리며 부탁하여, 끝내는 "소전이야말로 '세한도'를 간직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고 그가 죽은 뒤 아들로부터 인수하여 우리나라 국보로 남긴 사람이다.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는 살아생전에도 우리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명으로 꼽혔지만 세상을 떠난 뒤 날이 갈수록 예술가적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고 유홍준 교수는 말한다. 수화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받아들여 우리 근대미술을 세련시킨 점과, 추상표현주의를 토착화함으로써 우리 현대미술을 세계미술의 지평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그의 높은 안목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선배 시인 김광섭의 시(詩)를 생각하며 그린 작품 '16-Ⅳ-70'(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볼수록 그윽하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우리의 미술사에서 이러한 탁월한 안목을 가진 위대한 작가를 알아본 유홍준 교수의 안목 또한 탁월하다 아니할 수 없다.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사〉 대구독서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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