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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
1980년대까지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곳곳에 붙어있었고,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다. 시대가 변하여 최근 한 학급은 20명 채우기가 바쁘다. 대구에도 올해 입학생이 10명이 안 되는 초등학교가 5곳이나 되고, 경북도 32개 학교에 신입생이 없었다. 서울에서는 초등교사 자격을 취득한 144명이 모두 임용 대기 중이고, 의대에서는 산부인과가 가장 기피하는 전공 중 하나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부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어놓고 있지만 해마다 출생률은 낮아지고 있다. 출생장려정책이 잘못되었거나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지방소멸 더 나아가 국가소멸을 막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원인을 통해 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출산을 원하는 가구의 소득별 통계에서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아기를 갖고자 하는 비율이 높았다. 통계에 따르면 경제적 부분이 하나의 원인임은 분명하다. 가임여성들은 가구소득에 맞춰서 아이를 낳을 의사가 있는 것이다. 아이의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 줄 때 저출생 문제의 실마리 하나는 풀려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경제적 원인만이 저출생의 원인은 아니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인식, 국가의 출생정책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프랑스에서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와 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두 명의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공원에 산책을 나온 여성이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라고 하셔서 어떻게 그런 사정을 알아보시는지 물어보았다. 프랑스에서는 결혼해서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보다 여성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더 많고, 부부인 경우 엄마 혼자서 아기를 데리고 공원에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하셨다. 프랑스는 혼외 자녀의 비율이 2022년 기준으로 62%로, 혼인 중 자녀 비율보다 높다. 혼외 자녀를 두더라도 여성 혼자서 아이의 양육이 가능하도록 경제적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혼자서 2명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아이들의 양육이 부모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의 아들딸이라는 사고에서 모든 출생·양육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부모에게 모든 양육책임을 지우고 국가는 단순히 조력자나 후견인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가난해도 아이는 언제나 국가가 키워주고 교육시켜 준다는 신뢰가 생기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마련한 시스템의 보장 안에서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애정으로 보살피기만 할 수 있다면, 젊은이들이 왜 출산을 두려워하겠는가. 국가가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상당수 부담한다면, 가임여성들이 소득이 많고 적고를 따져서 출산계획을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다면, 어떤 부모가 혼자서는 책임지기 버거운 출산을 함부로 하겠는가. 후속세대에게 출산하지 않는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녀출산과 양육에 관하여 국가책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국가의 유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바로 후속세대를 통한 지속성이다.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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