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 극복의 수도 영천 '국내 최고 軍 친화도시' 가속도

  • 유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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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0 07:24  |  수정 2023-03-20 07:26  |  발행일 2023-03-20 제10면
'軍 프랜들리' 브랜드 홍보 본격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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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주년 영천대첩기념식에 참석한 영천전투 참가 장병과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천시 제공>

경북 영천시는 한국전쟁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역이다. 영천시는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국가의 운명을 바꾸고 자유를 지켜낸 국난극복의 DNA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호국의 메카다.

이에 시는 '대한민국 최고 군(軍) 친화 도시 영천' 조성을 위한 각종 정책개발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임진왜란 육지전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인 영천성 수복 전투와 구한말 산남의진, 6·25전쟁에서 반전의 계기가 된 영천대첩 등의 생생한 역사가 있는 영천을 '국난극복의 수도'로 알리기 위한 홍보에 본격 시동을 건 것이다. 최근엔 이전을 추진 중인 대구 군부대 유치에도 나섰다.

이에 발맞춰 "군(부대)과 지역이 상생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수많은 전쟁사와 군 시설이 자리한 영천의 미래를 군에서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영천지역 전쟁사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최기문 시장은 "영천시는 군 시설을 지역발전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고 군과 상생하면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길을 택했다. '군 프랜들리 도시 영천'으로 조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명실상부 호국의 고장
임란 영천성 수복·6·25 영천대첩 등
위기때마다 역사 남을 쾌거 이뤄내

관·군 상생 발전사업 만전
육군3사와 '호국시민공원 조성' 추진
어린이 체험시설 포함 2만5천㎡ 규모
경북도 최초 '군 장병 상해보험' 시행
포항 등 동남권 호국학술포럼도 계획

군부대
영천시 대구 군부대 유치 추진위원회가 지난 1월 팔공산 갓바위에서 대구 군부대 영천유치 성공을 위한 민관 한마음 소원성취 기원행사를 하고 있다. <영천시 제공>

◆영천의 오랜 전쟁 역사

영천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영천지역 읍지인 '영양지'에는 통일신라 말 영남의 대부분 주(州)들이 견훤에게 함락되었을 때 황보능장 장군이 세력을 일으켜 골화, 도동 등의 현을 회복하고 영천시 완산동과 고경면 대의리에 걸쳐 있는 금강산성을 축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러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김유신 설화가 대표적이다. 김유신이 17세 때 중악석굴(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들어가 수도를 했다는 이야기로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언급돼 있다. '삼국유사'에는 김유신이 고구려 간첩 백석의 꾐에 빠져 사지로 가고 있을 때, 골화천(영천)에서 유숙하는데 세 여신이 나타나 김유신을 구해준 설화가 있다.

김유신은 신라의 국운을 바꾸고, 삼국통일을 이루게 한 세 여신을 위하여 산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신라의 대사 3산(골화산, 경주 내력산, 청도 혈례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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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가 지난해 12월 개최한 영천 군사역사 학술포럼. <영천시 제공>

◆임란 영천성 수복 전투

임진왜란 최초로 육지전 승리를 이끈 영천성 수복 전투는 권응수, 정세아, 정대임 등 영천지역 유생들이 창의하여 수차례 유격전으로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이다. 영천성 수복 전투는 전황을 바꾸고, 의병과 관군의 사기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명군의 파병을 이끈 계기가 됐다.

'선조실록' 1592년 9월15일 기록에는 영천에 남은 일본군이 약 1천명으로 이는 본래 영천에 주둔했던 조선군의 2배가 넘는 큰 규모였다고 한다. 일본군 적장 가등청정이 영천에 1천여 군사를 남겨둔 것은 그만큼 영천이 지리적으로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후에 명나라 군대도 영천 신녕에 주둔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실록에는 한산대첩, 행주대첩과 맞먹는 최고의 승적(대첩)으로 평가했다. 이항복은 '백사집'에서 '이순신의 명량해전과 영천성 수복 전투가 임진왜란 중 가장 통쾌한 승리였다'고 했다. 이는 모두 '영천 싸움의 공로'라고 기록돼 있는데, 영천성 수복 전투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보여준다.

영천은 구한말 을미사변으로 촉발된 산남의진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는 전국의 의병들로 하여금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작전을 도모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산남의진에 참여한 많은 의병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간도로 건너가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 세력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6·25전쟁 영천대첩

6·25전쟁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영천의 중요성을 더욱 높였다. 국군8사단 이성가 사단장의 지휘 아래 단독작전으로 승리한 영천대첩(9월13일)은 인천상륙작전(9월15일)의 성공과 북진의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됐다. 당시 인민군 3천799명 사살, 309명 생포, 전차 5대, 장갑차 2대 등 노획품이 5천391점에 이르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며 북한군 제2군단 예하 15사단을 섬멸했다.

이 전투는 6·25전쟁 대반격의 전환점이 됐으며 당시 국군최고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은 영천전투를 영천대첩이라 칭했다. 미국 워커장군은 "한국에 와서 한국군의 가장 큰 단독 작전으로 승리한 전투도 처음이고, 이렇게 많은 전투 장비 노획 전과도 처음 봤다"고 평했다.

북한 김일성도 영천전투 실패가 패전의 요인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승리였으며, 6·25전쟁 3대 대첩의 하나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육군3사관학교와의 상생 발전

영천시와 육군3사관학교의 관계도 각별하다. 두 기관은 관·군 상생 발전을 위해 2015년 개교 46년 만에 담장 허물기 사업을 추진해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일부 시설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개방했다. 군악대 지원, 대민봉사활동 등의 교류를 하고 승마 강습반 운영, 행사 지원과 인구 증대 등 상호발전을 위한 업무협약, 평생교육 진흥을 위한 업무협약 등을 체결해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영천시와 3사관학교는 시민과 함께 하는 민·군 생활밀착형 공간으로 2만5천여㎡ 규모의 어린이 체험시설이 포함된 (가칭)호국시민공원 조성사업도 추진 중이다.

◆군 프랜들리 도시 영천

영천시는 2021년부터 경북도 최초로 '군 장병 상해보험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영천에 주소를 둔 현역 군 복무 청년이 대상이다. 또 전입 직업군인, 군무원, 육군3사관생도를 대상으로 전입지원금 20만원(전입 6개월 후), 생활지원금 30만원(전입 1년 후)을 지원하고 있다.

군인 및 가족에게 음식값 5~50%를 할인해 주는 군장병 할인 음식점도 많다. 외식업소 180개소, 휴게업소 10개소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2002년 국립 영천호국원 내에 영천 전투 참가 예비역 장성들이 주축이 되어 영천대첩비를 건립, 매년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2010년 영천대첩참전전우회가 주축이 돼 8사단 장병 및 참전용사 등의 성금으로 영천대첩 당시 8사단장이었던 이성가 장군 동상을 건립해 그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2018년에는 임진왜란 영천성 수복 전투 기념일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매년 9월2일 기념행사를 연다. 군사친화 도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난해 12월 군사 전문가 등을 초청, 영천 군사역사 학술포럼도 개최했다. 앞으로 인근 포항, 경주 등과 동남권 호국학술포럼도 계획하고 있다.

최기문 시장은 "6·25 대반격의 시작인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한 영천대첩, 포항 형산강 전투, 경주 안강전투를 재조명하고 참전용사들의 얼을 후대에 전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호국학술 포럼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강덕 포항시장, 주낙영 경주시장을 직접 만나서 이와 관련한 논의도 했다는 최 시장은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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