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안타까운 '갑론을박'

  • 황준오
  • |
  • 입력 2023-03-20 06:51  |  수정 2023-03-20 06:52  |  발행일 2023-03-20 제26면

2023031901000572500024011
황준오기자〈경북본사〉

"무덤 사방에 구멍을 파 혈 자리를 막은 것은 분명 흑주술의 일종"이라고 하자 "아니다. 글씨로 보아 저주가 아닌 좋은 기운을 넣어주기 위한 행위"라며 반박이 이어진다. 심지어 "이재명과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자작극"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모 묘소가 훼손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역 주민들은 이를 두고 연일 갑론을박이다.

이 대표의 부모 묘소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 관창2리 2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번 사건은 이 대표의 둘째 형이 제보를 받아 현장을 방문해 묘소가 훼손된 것을 확인하면서 알려졌다. 묘소 봉분 주위에 구멍이 나 있었고, 커다란 돌이 박혀 있었는데, 돌에는 한자로 '생(生)' '명(明)' '기(氣)' 자가 적혀 있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누가 왜 그랬는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며 혀를 찼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조상을 숭배해 좋은 장소를 찾아 조상의 분묘를 설치하고, 그곳을 조상의 영혼이 있어 경건한 곳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조상을 모신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예를 다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렇다 보니 법에서도 분묘를 훼손하면 '분묘발굴죄'로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미수범 역시 처벌 대상으로, 중대한 범죄 행위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니 범인과 범행 동기를 명백히 규명해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과거에도 유력 정치인을 향한 이른바 '풍수 테러'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묘역은 방화로 잔디 등이 불탔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조상 묘,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의 무덤이 훼손됐고,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직후, 조상 묘가 훼손된 적도 있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누가 묘역을 어떤 이유로 훼손했는지를 떠나 왜 이런 일이 이어지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선다.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얼마나 크면 저렇게 할까하는 참담한 마음마저 든다.

어떤 목적인지를 떠나 분묘를 훼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무덤에 구멍 파고 돌을 박아 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부정적 목적이면 더하겠지만, 긍정적인 목적일지라도 이러한 주술적 행위가 더는 없기를 바란다. 이건 우리가 가진 인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황준오기자〈경북본사〉

기자 이미지

황준오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