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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준 <작곡가박태준기념 사업회장> |
산허리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하고 화르르 벚꽃 흐드러졌구나 반겼더니 뽀얀 향기 자랑하며 라일락이 마중 나옵니다. 순서도 모른 채 봄꽃들을 맞이하니 마치 청년인 양 마음이 설렙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김동진의 가곡이 자연스럽게 맴돌기도 합니다. 이 계절이 주는 기쁨과 희망을 잘 담고 있는 음악입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음악대학 앞 잔디밭에서, 크고 작은 공연장과 방송에서 많이도 불리고 들리던 이 노래가 이제는 참 듣기 어렵습니다. 어느새 어린아이부터 장년층까지 연령과 무관하게 유행하고 있는 트로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정서를 다루는 학문이며 상품입니다. 한 사회가 어떤 음악을 만들고 소비하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회의 정서적 특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인 시에 선율을 입힌 우리 가곡은 우리 민족과 사회의 정서를 순화하고 긍정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자극적 요소들을 앞세워 철저히 대중성과 상업성을 활용하는 트로트 음악을 미취학 아동들까지 흥얼거리는 요즘의 상황을 보면 자칫 우리 사회가 더 큰 자극을 추구하는 중독사회로 변화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TV만 틀면 소위 '먹방' 아니면 트로트 방송으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2022년은 대구가 낳은 작곡가 박태준이 '동무생각'을 세상에 내놓은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가곡의 효시입니다. 조상들이 겪었던 일제강점기 냉혹했던 현실을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만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정치·경제·사회·문화·안보·국제관계 등 다방면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말을 빼앗기고 우리글을 빼앗겼던 그때 우리의 시와 음악으로 가곡을 만들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들의 마음을 다시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세계를 강타한 불황 여파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은 영국·독일·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나라들이 최근 학생 음악교육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교육을 통해 이루려는 미래지향적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한 미시적이고 근시안적인 교육·문화 정책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계 문화시장을 움직이는 한류의 열풍도 찾아보면 결국 우리 고유문화에 뿌리가 닿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가를 비롯한 공공행정이 수행하기 마련입니다. 행정예산 편성과 집행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역과 국가의 건강한 문화시장은 공공행정의 적극적인 협조로만 가능하므로 행정기관이 과연 어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역예술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활발히 소통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대구는 무엇보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입니다. 국제오페라축제와 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펼쳐지며 뛰어난 음악가와 음악교육기관, 공연장이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상업적이거나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 가곡이 점차 잊히고 사라지는 현실을 보면, 앞으로 우리 문화예술 발전에 미래가 있을지 걱정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 가곡의 탄생지이자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의 중심인 대구의 음악인으로, 예술행정가로, 또한 교육자로서 나름대로 부지런히 살아온 바, 제 음악 인생 50여 년의 결론은 우리 노래의 근간이 되는 가곡의 부흥이라고 주장합니다. 국민 누구나 애창하는 가곡 한 곡쯤 있고 가곡에 얽힌 추억이 하나씩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곡이 흐르는 도시 대구에서부터 대한민국 가곡의 열풍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희망의 새봄, 가곡을 노래합시다.
김완준 <작곡가박태준기념 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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