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실 기자의 주말적 허용] 팬데믹 단상…모두가 마스크 벗는 날, 모두가 환하게 웃는 날 되길…

  • 노진실
  • |
  • 입력 2023-05-12  |  수정 2023-08-12 13:01  |  발행일 2023-05-12 제35면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제약

팬데믹 전이 행복했을수록

적응 못하고 더 힘들 수밖에

아이들이 그린 엔데믹 세상

밝고 행복한 모습만 가득해

희망 가득 미래 어른들의 몫

[노진실 기자의 주말적 허용] 팬데믹 단상…모두가 마스크 벗는 날, 모두가 환하게 웃는 날 되길…
2021년 대구 북구 한림유치원 원생들이 '코로나가 끝난다면?'을 주제로 만든 작품. 당시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고 놀이터나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한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의 해제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20년 1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 약 3년4개월 만이다. '완전한 종식'은 아니라고 하나 현재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의 막바지에 와 있는 것은 맞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코로나19 비상사태 종식 이후에도 변이 바이러스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포스트 코로나'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1월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대구에서는 그해 2월 첫 확진자 발생 소식이 전해졌다. 그로부터 지난 3년여의 시간은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잊지 못할 시간일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삶의 제약들을 경험하다

[노진실 기자의 주말적 허용] 팬데믹 단상…모두가 마스크 벗는 날, 모두가 환하게 웃는 날 되길…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방역패스'가 적용되던 시절, 대구의 한 건물 앞에 세워진 안내문.

사람들은 '평균'을 좋아하고 추구한다. '예외'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다수'에 속해 있어야 안심하고, '소수'가 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한다. 좋든 싫든 세상에는 그 나름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편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팬데믹은 여기다 새로운 기준과 규칙을 더했다. 세상의 기준은 '감염병 예방'에 맞춰졌다. 팬데믹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염병과 관련해)'안전한 자 vs 위험한 자' '백신을 접종한 사람 vs 접종하지 않은 사람' '마스크를 쓴 사람 vs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 등으로 구분됐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을 보호하기 위해 방역조치가 내려졌고, 개인의 삶에도 크고 작은 제약이 가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내 이웃을 감염병에서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삶의 제약을 받아들였다. 오랜 기간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고, 코로나19 예방 백신이라는 것도 접종했다. 한동안 요양병원 등 코로나19 감염취약시설에서는 대면 접촉 면회가 중단됐고, 해외여행도 자제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으로 인해 사람들의 모임과 활동에도 제약이 가해졌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이탈자도 생겼다. 지병 혹은 심각한 알레르기 등으로 인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제약이 생겼다. 바로 '방역패스(백신패스)'이다. 백신 미접종자에게 다중이용시설 이용을 제한한 조치였다. 백신 접종 증명서는 팬데믹 시기에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자격증이었다. 백신 접종 여부를 일일이 조사하던 시절에 백신 접종자는 다수였고, 미접종자는 소수였다. 피치 못할 사정 등으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은 방역패스가 시행되는 동안 어떻게 일상을 보냈을까. 어떤 죄책감을 느꼈을까.

위와 같은 팬데믹 시기의 경험이 여러 형태의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깊이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는 누구라도 세상의 주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로 인해 몸소 체험하지 않았나.

◆인생은 불공평하나 또 공평하다

왕가위 감독의 '2046'이라는 영화가 있다. 2004년 개봉한 이 영화의 내용은 홍콩의 상황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으나 어쩌면 우리 인생을 관통하며 은유하고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그러니까 '화양연화' 이후를 다룬다. 영화 속에선 지난 시간이 아름다웠던 사람일수록 현실의 쓸쓸함은 크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것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아름다운 어제는 다시 찾아오지 못하니까. 그리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사실을 매일 자각해야 하니 얼마나 쓸쓸하겠나. 이에 반해 화양연화 같은 것을 아직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현실은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인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현실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소유(所有)' 여부로 승패를 나눈다면 전자가 승자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졌던 행복만큼 지금의 불행이 큰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사람의 처지가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불공평하지만, 또 공평한 것이다.

그 영화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기에도 자연스레 대입이 된다. 팬데믹 시기를 상대적으로 잘 적응하며 보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응을 힘들어한 사람도 있었다.

인생의 화양연화를 보내던 사람이 코로나19에 갇힌 시간을 더 힘들어하는 듯했다. 삶이 가장 행복할 때 우리는 그 시간이 최대한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삶에 있어 걱정 없이 행복할 시간, 나이, 상황이 찾아오는 때가 귀하고 어쩌면 한 번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나. 이는 역사와 수학,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인해 그 행복했던 시간이 갑자기 멈추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찾아오기 전 짧고 강렬한 행복을 맛봤기에 팬데믹의 시간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다. 기약 없이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들어가고, 주변 환경은 변해가고… 팬데믹 이전이 행복했던 이들일수록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잃어버린 '작고 소중한 것'을 영영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차라리 팬데믹 이전에 화양연화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코로나의 시간이 좀 더 견디기 나았을지 모른다.

전 세계, 아니 한 개인을 강타한 미증유의 바이러스는 우리 인생이 불공평하지만, 또 공평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치게 했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어른의 책임

"코로나가 사라지면 마스크를 벗고 자전거를 타고 싶었어요" "친구들과 막 뛰어놀고 싶었어요".

어린이날 특집 기사를 위해 지난달 만난 대구 한 유치원의 어린이들이 '코로나가 끝나면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한 말이다. 초등학교에 가면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어린이들은 믿고 있었다.

2020년 봄 이후 아이들의 생활도 크게 변했다. 아이들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유아기에 팬데믹을 겪어야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이 잃어버린 시간이 유난히 더 안타까운 이유다. 어른과 같은 방역수칙을 지켜야 했기에 아이들의 놀이와 활동도 팬데믹 이전보다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는 아이들이 밖에서 마음껏 친구들을 만나거나 뛰어놀지도 못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그려가고 있다. 아이들 손으로 그린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알록달록 밝고 행복하다. 그림 속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 있다. 그 그림들처럼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그 이전보다 좀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시기에도 각종 범죄와 양극화, 불공정 등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이 자취를 감추지 않았다. 팬데믹을 보낸 아이들이 그림처럼 밝고 희망적인 세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어른의 몫일 것이다. 팬데믹은 어른에게 큰 '책임'을 남겼다.

글·사진=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