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여백과 공간 1

  •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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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4  |  수정 2023-07-04 07:51  |  발행일 2023-07-04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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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설치미술작가>

미술작품의 여백과 현대 건축의 공간은 얼마나 밀접한가. 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나는 평면에서 보이는 시각적인 여백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생활) 속에서의 여백을 느끼고 싶어 런던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건축과 교수님 지도하에 공간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다.

고전적인 한국미술과 현대 건축에서의 공간디자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 그대로의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라는 너무나 상반된 키워드가 떠오를 것이지만, 그곳에서의 시간과 공부의 단계가 누적될수록 그 둘의 유사성에 내 머릿속 하얀빛이 느껴지는 횟수도 늘어만 갔다.

언어에 비유하자면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영어를 배우게 되면 처음엔 전혀 다른 언어처럼 느껴지지만, 영어를 통해 한국어의 이해도가 풍부해지게 되고, 다르게만 느껴졌던 두 언어가 너무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순수예술, 특히나 전통화로 분류되어 왔던 한국화의 여백과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공간은 같은 것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작품에서의 여백은 자연을 중심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비워두는 사상(思想·thought)과 마음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누구나 아는 말이겠지만 여백이라는 것은 그리지 않은 부분이나 그리고 남은 부분이 아니라 의도적 비움이다. 건축에서의 공간 역시 의도적인 비움이다.

대학시절부터 작품을 구상하거나 감상할 때 여백의 흐름으로 작품을 먼저 읽는 것을 습득해 왔다. 큰 캔버스를 보면서 어떻게 구도를 잡아야 할지 막막할 때 비워두고 싶은 공간을 생각하고 구도를 잡으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구도가 쉽게 풀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작품에서 여백이 주체(主體)임을 느끼게 된다.

건축에서 공간 구성도 그렇다. 좋은 공간을 거닐면(그 공간이 좁든, 넓든 상관없이) 발이 쉽게 움직여지고 몸도 마음도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조금은 복잡한 공간을 지나다가도 용도가 없는 공간(쓸모없는 공간)을 지나면서 눈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지나왔던 공간들의 가치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여백과 공간은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변화에 적응, 순응하는 여유를 주고. 작가나 건축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강조하거나 숨겨진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우리 어머니의 넓고 푸근한 사랑처럼, 여백은 분주한 일상에서의 긴장감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 사회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을 여유로움으로 변화해 해주는 것이다.

박정현<설치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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