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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지난해 8월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시간당 141.5㎜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 가공할 '극한호우'였다.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최대 강수량이다. 기상청이 올해 '극한호우'를 공식 용어로 채택할 만큼 폭우의 빈도도 잦아졌다. 기후변화 전문가 예상욱 한양대 교수의 말마따나 "이제 극한호우가 뉴노멀"인 모양이다.
극한폭염도 지구촌을 달군다.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데스밸리는 역대급인 53℃를 경신했고, 유럽 시칠리아는 48.8℃를 기록했다. 극한기후는 거대한 부메랑처럼 인간을 덮친다. 화석연료를 남용한 대가다. 극한기후의 재앙은 재난에만 그치지 않는다.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물가를 자극한다. 우리나라 평균 기온이 2℃ 오르면 국내총생산(GDP)이 9%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뉴노멀이 극한기후뿐이랴. 정치 쪽도 뉴노멀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극한정치다. 조선시대 붕당정치, 사색당쟁보다 더한 극단의 정치다. 여야 모두 이념 극지(極地)의 지지자들을 애호한다. 하지만 팬덤 몰빵정치는 위험하다. 극우·극좌의 확증편향이 상식과 이성과 법리를 뭉개기 때문이다.
여야 간 대화가 없고 협상이 없고 밀당도 없다. 협치와 협업이 사라졌다. 극한대립만 있을 뿐이다. 취임 1년이 넘도록 야당 지도부를 만나지 않는 대통령의 냉골도 어지간하다. 교집합지대가 없으니 정책의 공통분모 도출이 어렵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년간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7%에 불과하다. 역대 최악 '식물국회'다. 극한정치의 후과(後果)다. 국회가 국정 조율의 장(場)? 정쟁의 공간, 의원들이 팻말 들고 시위하는 장소로 눈에 더 익숙해졌다. '민주당 입법-대통령 거부권' 도돌이표 역시 극한정치의 일단이다.
극한정치를 완화할 방책이나 변수는 없을까. 있긴 하다. 제3지대의 파괴력이다. 하지만 3지대가 꿈틀대긴 해도 아직은 지각변동을 일으킬 확장성과 구심력이 없다. 금태섭·양향자급(級) 신당으론 거대 양당 구도를 깨뜨리지 못한다. 중량감 있는 리더의 등장 여부가 관건이다.
무소속 후보의 의회 진출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다. 일본의 중의원·참의원이나 지방의회는 무소속 의원이 꽤 있다. 우리는 전멸 상태다. 그나마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탈당한(사실은 위장탈당) 의원이 거의 전부다. 정당 깃발만 보는 '묻지마 투표' 성향이 양당정치를 부추겼다. 인물과 능력을 우선하는 유권자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도 극한정치를 완충할 장치다. 당연히 양대 정당의 프리미엄과 지배력이 약화된다. 다당제의 초석을 놓고 막무가내식 후보 단일화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마크롱처럼 정당 기반 없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물론 결선투표제는 개헌이 필요하다.
골디락스(goldilocks)는 과열되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상황을 뜻한다. 골디락스란 말엔 대립이 아닌 유화(宥和), 극단이 아닌 중립, 포용과 합리, 실용, 효율, 융합 등 다양한 함의가 녹아 있다. 극한정치를 물리고 '골디락스 정치'를 지향해야 할 때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대로 "정(正)·반(反) 대결을 지양하고 합(合)으로 모아져야" 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이 시대 정치판에도 유효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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