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日 '도리마 범죄' 韓 되풀이 막아야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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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0  |  수정 2023-08-10 06:53  |  발행일 2023-08-10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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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경북본사 부장

'정치(政治)'의 사전적 의미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 외에도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도 담겨 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묻지마 범죄' 소식을 접하면서 대한민국 정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묻지마 범죄' 피의자와 SNS 협박 글 작성자 대부분은 20대 전후의 젊은 층이다. 물론 이 중에는 모방이나 호기심에 의한 것도 있지만,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묻지마 칼부림'으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 13일 만인 지난 3일 경기도 성남 서현역 한 쇼핑몰에서 무차별 범죄가 발생, 1명이 숨지고 13명이 크게 다쳤다. 다음 날인 4일에는 대전의 한 고교에서 이 학교 졸업생 20대 제자가 40대 스승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성남과 대전에서 흉기를 휘두른 피의자는 둘 다 20대 초반인 데다, 모두 앞선 묻지마 범죄 기사를 검색한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미리 준비했다기보다는 다른 이의 범죄가 억눌려 있던 자신의 분노를 폭발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들을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질환에 따른 범행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10여 년 전 일본에서 비슷한 사건이 잇따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앞선다.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도리마(通り魔·거리의 살인마) 범죄'가 매년 4~14건 발생했다.

'도리마 범죄'는 2008년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한 남성이 차 없는 도로로 바뀐 대로로 트럭을 타고 돌진해 보행자들을 친 뒤 차에서 내려 흉기를 마구 휘둘러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사건 이후 붙여진 이름으로, 이후 10년 가까이 일본에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비정규직 회사원이었던 피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대상에 대해 "누구라도 좋았다"라고 했다.

당시 일본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의 근본 원인에 대해 '절망'과 '고독'이라고 진단했다.

범죄심리학자 하세가와 히로카즈씨는 "범인들은 살아도 의미가 없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고 목숨을 끊으려 한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사회 탓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도 데려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여러 가해자들을 면담한 결과, 후회와 원망을 오랜 시간 축적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전했다.

사회심리학자 우스이 마후미씨 역시 "인생의 최후에 많은 사람을 살해하면서, 자신을 바보로 취급해 온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알리고 싶어한다"며 "일종의 '확대 자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죽어도 좋다는 게 '도리마 범죄' 가해자들의 태도이기 때문에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효과가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도리마 범죄'가 한국에서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정치권의 노력 또한 절실하다.

작금의 정치 현실을 보라. 국민의 고충이나 시련 따윈 안중에도 없다. 상대 진영을 비난하고 헐뜯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22대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상황은 더욱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권은 더 이상의 갈등과 반목을 멈추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정치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임성수 경북본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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