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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문화부 선임기자 |
개인적으로 기자는 우리나라 지방도시, 그중에서도 대구와 부산을 특히 좋아한다. 객관적으로 저 도시들이 괜찮냐는 것과는 별개로 그냥 취향의 문제다. 대구도 부산도 모두 스스로 선택한 도시였다. 외국에서도 수도보다는 제2·제3 혹은 그 이상의 도시가 여행하기 편하고 매력적이었다. 일본은 후쿠오카, 대만은 가오슝, 미국은 시애틀, 프랑스는 디종이 수도보다 더 좋고 정이 갔다. 이 도시들은 적절한 도시 규모에 딱 적당한 인프라와 재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 간 격차 등 개선될 문제도 많지만, 기자 개인에게는 지방도시에서의 삶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지방에선 내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며 '큰 세상'을 찾아간 지인도 있다. 그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세상이 숨 막힌다고 했다. 제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구의 사돈의 팔촌'으로 묶고, 그걸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싫다고 했다. 지방살이에 있어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가능성의 제약'이었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나 역시 그가 떠난 그 이유 때문에 답답할 때가 있지만,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매력 때문에 이 도시에 계속 살고 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니 그의 선택도, 내 선택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기자도 일을 하면서는 '변방인' 스트레스를 마주해야 할 때가 있었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를 움직이는 대부분의 것이 서울에 집중돼 있으니까. 서울과 수도권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그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변방으로 비칠 수 있다. 몇 해 전 고생하며 쓴 기획기사의 제목 '사는 곳이 계급인 나라'처럼, 어쩌면 지역 간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할지 모른다.
중요한 취재를 할 때면 '혹시 지방이라 취재의 기회가 제한되는 건 아닐지' '어떤 정보가 서울을 거쳐 뒤늦게나 지방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변방의 기자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이 늘 따라다니고 가끔 주눅도 든다. 이 나라의 지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분야든지 간에 그런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문화예술에는 변방이 없다'고 느끼는 일을 겪었다.
지난 8일, 우연한 기회로 일본 배우이자 무용가인 다나카 민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메종 드 히미코'에서 히미코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여러 작품에 나온 유명 배우지만, 나에게 그는 영원한 히미코다. 지금보다 세상이 녹록지 않았던 시절,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연인, 그리고 성소수자로 꽤나 복잡한 삶을 살아낸 인물을 다나카 민은 아름답고도 카리스마 있게 표현해냈다.
그와의 인터뷰가 이뤄진 곳이 '대구'였다. 인터뷰 시간과 기사 분량의 한계는 있었지만, 기자가 가진 작은 잠재력이라도 끌어올려 좀 더 나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를 통해 위로받고, 이해받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봤을, 그래서 이 기사를 읽을 사람들을 위해서.
인터뷰가 끝난 뒤 다나카 민에게 대구는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무용 등 여러 문화예술 장르가 발달한 도시라고 알려줬다. 대구에는 뛰어난 문화예술인도 많다고. 그것은 지방도시에서 한 번씩 움츠러드는 나 자신에게 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문화예술에는 중심과 변방이 없다.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노진실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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