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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 서상호 셰프가 명품요리를 지향하는 자신만의 요리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
◆첫 직장은 싱크대 제작 공장
"제 고향은 포항 기계면에서 조금 더 들어가 있는 '가안'이라는 마을이에요. 어렸을 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2~3년간은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죠. 하지만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아 무작정 서울로 와버렸어요."
서울에서 구한 첫 직장은 싱크대 공장이었다. 낮에는 먼지를 한 움큼 먹어가며 공장에서 씨름하고, 밤이 되면 야간 고를 다녔다. 주경야독의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으로부터 새로 개업하는 호텔의 주방에서 일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요리가 뭔지도 몰랐지만 단번에 '오케이' 했다. 1979년 5월 개업한 서울 신라호텔 주방에 3월부터 출근했다.
사회초년병 시절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공부했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친김에 대학·대학원까지 마쳤다. 호텔 측도 젊고 열의에 찬 직원을 적극 지원하며 의욕을 북돋웠다. 네덜란드에서 2년간 공부하도록 해주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도 수학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17년간 주방 책임자 '롱런'
해외에서 요리의 이론과 실기를 배운 그는 귀국 후 본격적으로 현업에 뛰어들었다. 프랑스·싱가포르 등 각종 요리대회에 출전해 대상도 여러 번 수상했다. 그렇게 분주하게 생활하던 중 1999년 11월 마침내 총주방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무려 17년간 주방의 총괄 책임자로 '롱런'했다. 대개의 주방장들이 3~4년 만에 교체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몇 년 전 주방장 자리를 후배에게 넘겨준 그는 최근 관리자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회의 주재, 외국인 주방장 면접, 신규 매장 오픈준비 등이다.
"제가 요리에 특출한 재능이 있다거나 특별하게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요리를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이 음식이 과연 신라호텔의 정체성과 어울리냐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국빈들이 찾고, 국제 행사를 치러내며, 최고의 '호스피탈리티' 기업을 목표로 하는 신라호텔의 이미지와 맥락을 같이하면서 고객들에게 만족스러운 한끼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44년째 신라호텔 지킨 '1세대 셰프'
10대때 상경해 우연히 개업멤버 합류
주경야독으로 대학·대학원까지 졸업
열정 인정받아 호텔서 해외유학 지원
탄탄한 이론과 실기 쌓으며 승승장구
평균 3~4년인 총주방장 17년간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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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 셰프 제공〉 |
요리를 할 때의 그는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은 물론 후배들에게도 조금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성정이 고스란히 요리에 담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음식'은 어떤 음식일까.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복잡한 장식이나 군더더기 없이 주재료 하나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좋은 식재료를 찾는 것도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강조했던 "명품이 되라"는 말을 차용했다.
"요리도 명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품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정교합니다. 시장에서 구입한 이미테이션 제품은 어딘지 모르게 화려하고 요란한 장식들이 오히려 조악함을 느끼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좋은 요리는 요란한 장식을 하기보다 싱싱하고 좋은 재료를 활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로 가는 'K-요리'
한국 정부는 몇 해 전 '한식의 세계화 사업'을 추진했다. '한류 붐'을 타고 한국의 전통요리를 세계적 상품으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밥과 국, 여러 가지 반찬류까지 동시에 차리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졌다. 또 잔반이 많이 남아 처리 비용이 추가로 드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적잖은 문제점이 지적됐다.
그는 "여러 가지 제약에도 한국 전통음식의 세계화는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가 BTS의 음악을 들으며 굳이 한국 전통음악을 고집하지 않듯이 K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음식을 원칙 그대로 고수하는 분들은 그대로 발전시키면서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형태와 내용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습니다. 선배들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후배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K푸드가 세계적 상품으로 발전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젊은층 최애템 '망고빙수' 개발
"망고빙수는 이부진 사장 功이 절대적
출장때 눈꽃 얼음 보며 아이디어 줘"
자신의 철학 녹인 음식 브랜드 준비
"명품요리는 요란한 장식을 하기보다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
◆불후의 히트작 '망고 빙수'
요리와 함께한 40여 년. 그동안 수많은 이들과 요리를 통해 교감했다. 지미 카터,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중국 주석과 마이클 잭슨, 빌 게이츠, 톰 크루즈, 펠레, 안토니오 사마란치 등 수많은 VIP 인사들을 접대했다.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리가 탄생했는데, 그중에서도 '망고 빙수'는 전국민적 관심을 얻은 히트작이었다. 신라호텔 망고 빙수는 9만8천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여름 최애템'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과즙이 풍부하고 상큼한 맛을 가진 제주도 애플망고에 눈꽃처럼 부드러운 빙수가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망고빙수가 탄생한 배경에는 이부진 사장님의 공이 절대적이었어요. 함께 해외에 출장갔다가 얼음이 눈꽃처럼 부드럽게 갈아지는 기계를 보고, 사장님이 아이디어를 주셨지요. 이렇게 전국민적 관심을 받게 될 줄을 몰랐어요."
◆다시 꾸는 '셰프의 꿈'
그는 요즘 새로운 기대와 꿈으로 부풀어 있다. 그동안 축적된 요리지식과 노하우를 결집한 자신의 요리를 브랜드화하고, 대중을 만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아직 구체적 론칭 일정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도전하고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즐거움을 느낀단다. 고향인 대구경북의 음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어린 시절 포항집의 밥상을 생각하면 다양하고 싱싱한 젓갈류가 떠오른다. 대구경북의 음식도 지역의 특징을 잘 살린다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 품격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요리는 예술이자 과학이며,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문화 활동입니다. 요리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감각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이웃과 소통하고,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닌 우리의 정서를 풍요롭게 합니다. 땀방울과 정성 가득한 음식으로 세상에 미소와 행복이 전달되기를 희망합니다."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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