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영남일보와 함께한 날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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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1 06:56  |  수정 2023-10-11 08:57  |  발행일 2023-10-11 제26면
영남일보 32년 6개월째 근무
서문로-원대동-신천동시대
대구시민주간 제정에 힘보태
수도권-지방 양극화 심해져
지역지로서 퍼스트펭귄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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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돌이켜보니 32년 6개월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1991년 5월6일. 그날은 영남일보 기자로서 청운의 꿈을 품은 채 대구 중구 서문로 옛 사옥으로 첫 출근한 날이다. 입사 1~2개월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낙동강 페놀유출사건과 일명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때문에 당시 대구사회는 어수선했다. 영남일보 입사 논술시험 제목이 '물'이었을 정도로 환경문제에 대한 파장이 컸다. 정치적으로는 명지대생 강경대 구타치사사건으로 정국이 얼어붙었다. 제도적으론 '87년 체제'로 민주화가 된 듯했으나, 대학가 집회와 시위는 연일 벌어졌고, 거리엔 짱돌과 최루탄이 난무했다.

당시 사진기자였던 나는 오죽하면 '데모와 프로야구만 없으면 기자 생활은 할 만할 텐데…'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취재업무가 힘들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사회의 언론환경은 나쁘지 않았다. 6·29선언 이후 5년간 종합일간지가 3배 이상 창·복간되면서 신문이 호황을 누렸다. 언론고시라 불릴 만큼 기자도 인기 직종이었고 임금도 대기업 못지않았다. "기자는 돈의 유혹에 굴하면 안 된다" "이익을 보면 먼저 의를 생각하라" "존경받지는 못하더라도 지탄받는 기자가 돼선 안 된다" 당시 수습기자 교육을 맡았던 편집국 대선배들의 충고가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해 9월13일 영남일보는 44년간의 서문로 사옥을 떠나 대구 원대동으로 2년 4개월간 둥지를 틀었다가 1994년 1월30일 지금의 대구 신천동으로 옮겼다. 내년 1월30일은 신천동 사옥 이전 30주년이 된다. 그간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시간들을 보냈다.

1995년 4월28일과 2003년 2월18일 오전은 특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각각 대구 상인동가스폭발 참사와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수백여 명이 희생됐다. 현장을 취재하면서 생명과 안전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깨달은 사건이었다. 이 밖에도 성주 대잠헬기 추락(1993), 김해 중국민항기(2002)와 합천호 소방헬기 추락(2003), 태풍 루사(2002)와 매미(2003) 취재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카메라 대신 펜을 잡고 나서부터는 4년간의 '대구지오그래피' 연재, '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시리즈, '코리안 디아스포라' '대구경북의 해외 독립운동' 등의 취재가 기억에 남는다. 이육사 시인의 대구 옛집을 발굴해 기념관으로 건립한 것이나 대구시민주간(2.21~28)을 제정하게끔 한 것도 큰 보람이다.

"영남일보는 질곡의 역사를 지녔다"는 대선배의 말을 실감한 건 1997년 10월에 터진 IMF외환사태였다. 그 위기가 영남일보만의 역사가 아니었지만, 영남일보는 언론사 최초로 법정관리에 들어갈 만큼 혹독한 고통을 감내했다. 신문산업도 이때부터 양극화됐다. 전국지와 지역지의 임금 차이가 예전보다 훨씬 벌어지고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산업·교육격차도 점점 커져 갔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 격차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본다.

2004년 봄 중국 동북3성에서의 '경상도마을' 장기 취재 이후 이듬해 1년간은 중국에서 연수생활을 했다. 우리 역사를 밀도 있게 탐색하고 한반도를 보는 시각이 넓고 깊어진 계기가 됐다. '김영란법' 탓에 후배기자들의 연수기회와 출간지원이 끊긴 게 아쉽다. 개인적으로 7차례의 사진전과 3권의 책 출간, 기자상 수상 등은 신문사 생활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됐다.

2005년 8월1일 영남일보가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하면서 영남일보는 지역의 아침을 깨우는 신문이 됐다. 이후 이슈를 선점하면서 지역신문으로서 퍼스트펭귄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오늘은 영남일보 창간 78주년이다. 앞으로도 대구경북의 역사는 영남일보에 기록될 것이다.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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