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망하게 하는 법'을 먼저 떠올린다면…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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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6  |  수정 2023-10-16 06:48  |  발행일 2023-10-16 제22면
나쁜 부분 찾는 실패하는 법

해법보단 문제원인 찾아야

망하는 법 다음은 '오답노트'

최우선책은 과거 살피는 것

효용 없다면 빨리 실패해야

[하프타임] 망하게 하는 법을 먼저 떠올린다면…
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우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 해법을 찾으려 애쓴다. 비슷한 사례를 웹에서 검색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책을 찾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수도 있다. 즉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일을 잘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면, '실패하는 방법'을 먼저 찾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문제가 실패했던 원인을 찾은 뒤 역으로 해결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외식 경영 전문가이자 방송인인 백종원씨는 가게를 영업 중인 소상공인들에게 "잘 안되는 집에서 장사가 안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성공한 곳을 벤치마킹하는 것보다 안되는 곳을 살펴보면 대비할 포인트가 보인다는 설명이다.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자신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근무 평가를 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일을 더 줘 전체 업무 능력을 떨어뜨린다. 조언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만 듣고, 알 수 없는 수치로 회사가 어렵다는 불안감만 조성한다. 리더의 의미 없지만 지속적인 연설은 물론이거니와 수년째 실패했던 것을 두고 목표나 전략 변경 없이 임직원이 전력을 쏟도록 한다면…. 이런 회사는 정말 망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이는 로버트 M. 갈포드·밥 프리쉬·캐리 그린의 책 '회사를 망하게 하는 법'의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가장 쉽게 정당이 망하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비난의 대상을 찾는 '범인'을 찾으면 된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나 구조를 찾는 것보다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만 공격하면 되는 것이다. 범인이 여러 명이거나 계파나 특정 집단의 핵심 세력이면 더 좋다. 반발로 계파 갈등이 일어날 것이고, 당이나 세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외부 조언은 듣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개인 평가에는 친소 관계를 먼저 따지는 것도 정치를 망하게 하는 필수 요건이다. 이 역시 지난 7월에 만난 국회의장 출신 원로 정치인이 해준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문가를 찾지 않더라도 수년간의 정치 뉴스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힘들다면? '오답노트'만 봐도 좋다. 이런 것은 정치권이 잘한다. 실패했을 때마다 보여주기식으로나마 '백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자유통합당·미래통합당 시절 '폭망(폭삭 망하다)' 했을 때 만든 것이 많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총선 6개월여를 두고 '빨간불'이 들어온 국민의힘은 임명직 당직자들이 총사퇴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거 자유한국당은 4년여 전인 2019년 12월2일, 총선을 앞두고 쇄신하겠다며 당직자들이 일괄 사퇴를 했었다. 이후 진보 진영에 180석을 내어준 역대급 폭망 결과를 받아든 뒤에도 백서를 제작했는데 '전현직 의원 돌려막기, 중진들의 험지 재배치' 등이 제시가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시 영남 지역 의원들의 '수도권행'이 거론되고 있다. 언론들도 이래저래 부추기는 것을 보니, 결과마저 4년 전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부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시기적으로나 외부 상황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면…. 미안하지만 하루빨리 망해서 따르는 사람이나 지역에 새로운 희망이나마 찾도록 하는 것이 해법이라 생각한다.

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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