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오픈 더 도어' 송은이·장항준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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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3 08:06  |  수정 2023-11-03 08:06  |  발행일 2023-11-03 제14면
32년지기 선후배…영화제작 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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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오른쪽) 감독과 송은이 컨텐츠랩 비보 대표는 32년 전 서울예술대 캠퍼스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긴 세월 동안 끈끈한 인연을 이어온 두 사람은 영화 '오픈 더 도어'의 연출자와 제작자로 새로운 영화인생을 시작했다. 〈컨텐츠랩 비보 제공〉

영화 '오픈 더 도어'의 장항준 감독과 제작자 송은이 컨텐츠랩 비보 대표는 32년 전 서울예술대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다.

야상을 입은 꾀죄죄한 복학생 장항준의 눈에 신입생 송은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둘은 그때부터 찰떡 케미를 자랑했다.

만나면 웃고 떠들고 얘기하며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몰랐다. 한편으로는 서로의 앞날이 캄캄하다며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저 오빠는 나중에 뭘할까?' '은이는 훗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그렇게 서로를 걱정하며 챙겨주며 살아온 세월이다.

그리고 32년이 흐른 지금 둘은 의기투합해 한 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을 맡고, 후배인 송은이가 제작을 했다.

미국 뉴저지 한인 세탁소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미국 이민자 가족의 실태를 명민한 언어와 예민한 촉수로 포착했다. 영화는 비록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영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신선하고 진지한 시도'라는 의미 있는 평가를 받았다.

장 감독은 송 제작자를 '초식동물'에 비유했다. 성정이 온화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큰소리 내지 않는 모습이 마치 이빨 없는 동물 같다는 것.

긴 세월 동안 연예계의 좋은 선후배로 서로를 인정하고, 이끌어주는 활동을 펼쳐온 이들이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학 선후배로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더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함께 작업한 소감은.

△장항준="30여 년 인연을 맺어오면서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비슷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을 해결하는 방식도 닮았고요. 직업인으로서 송은이씨는 매우 존경스러운 면이 있어요."

△송은이="어차피 서로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기에….(웃음) 대학교 1학년 때 복학생이던 항준 선배를 처음 만나서 32년간 만남을 이어왔어요. 워낙 둘이 잘 알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할까요. 작업을 결정하는데 큰 망설임은 없었던 것 같아요."

▶송 대표는 첫 영화 제작인 만큼 감독에 대한 믿음이 더욱 중요했을 듯하다.

△송="네. 그 부분은 아주 명확한데요. 이 작품이 첫 제작이지만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의 문제만 일어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상식을 넘어서 감독님이 갑자기 뭘 어떻게 한다거나 또 배우들에게 변수가 생긴다거나 하는 일은 감독님 현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애당초 알고 있었지요. 제가 숟가락을 얹어서 작업을 하더라도 제가 가진 영역 안에서 조절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에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송은이

제작 송은이
딱 한 번 세트건립 문제 부딪혔지만
이유있을 거라 확신해 내 생각 접어


▶세트 제작을 둘러싸고 딱 한 번 감독과 제작자가 부딪혔다고 들었는데.

△송="작품의 배경이 미국 뉴저지였어요. 감독님은 미국 가정집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세트를 지어야 된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예산이 억 단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내심 '오빠가 무슨 봉준호야?'라고 투덜거리기도 했지요. 감독님 입맛에 맞춰 몇 개의 대안을 제시했는데 감독님이 계속 '안될 것 같은데…'라고 하기에 '이 분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진짜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구나' 생각하고 제 생각을 접었어요."

△장="그런 게 있어요. (아내)은희나 (제작자)은이나 저한테는 둘 다 '은이'예요.(웃음) 저는 두 사람이 얘기하면 일단 기본적으로 저들이 말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을 해요. 은이가 싫다고 하는 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그런 식이죠. 어려운 형편에도 세트를 만들어줘 신나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장항준

감독 장항준
美 한인세탁소 살인사건 실화 배경
심리스릴러로 다르게 접근한 영화


▶작품의 제목을 '오픈 더 도어'로 정한 이유는.

△장="살면서 누구나 최소한 만 번 이상은 문을 열고 닫을 거예요. 집의 화장실 문이든, 아파트 현관이든, 엘리베이터 문이든지요. 그리고 문의 숫자도 엄청날 겁니다. 편의점을 가든, 지하철을 타든 아마 우리가 익히 생각지 못한 다양한 문들을 직면하게 될 텐데 간혹 문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인생을 바꾸기도 할 거예요. 우리 앞에 놓인 문이 때로는 열지 말았어야 하는 문이기도 하고, 열어야 하는 문이기도 하고, 열 수밖에 없는 문이기도 할 텐데, 그런 욕망의 문을 열었을 때 파멸의 길로 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해보고 싶었기에 제목을 정했어요."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인데, 어떻게 이 이야기에 주목하게 됐나.

△장="저는 이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뉴저지주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접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죠. 그런데 뉴스, 시사프로, 방송에서는 단지 내용을 던지기만 할 뿐 온전한 결말이 없어요. 하지만 영화는 좀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을 역순으로 전개하면서 가족이 가장 탄탄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향하는 거죠. 비록 그 가족들은 그 문을 열고 다시 돌아갈 수 없겠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요."

▶장르를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로 결정한 이유는.

△장="개인적으로 지금까지 했던 상업영화들과는 좀 다른 결의 작품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저나 송은이 대표나 나이가 50대가 됐어요. 그동안 무섭고, 웃기고 하는 직관적인 이야기들은 많이 해본 것 같아요. 관객들이 문을 나서는 순간 뭔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은 많이 안 해 본 것 같고, 그것이야말로 조금 나이 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할까요."

▶송은이 대표가 운영하는 '비보'와 작업한 소감을 이야기한다면.

△장="우선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타진하는 모습이 정말 가족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뭐랄까. 이빨 없는 짐승들이 모여서 이유식이나 미음 같은 걸 먹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초식동물 같은 순하고, 착한 사람들의 분위기가 느껴졌지요. 오너가 어떤 경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회사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했는데, 말단 직원들까지 조직의 분위기에 동화된 모습에서 선한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송="저희의 회식 메뉴는 풀이 아니고 고기입니다.(웃음)"

▶영화 '오픈 더 도어'는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문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공동작업을 마친 두 사람은 지금 어떤 문을 열게 된 것인가.

△장="32년 전 철없던 아이들이 이제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되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았다. 언뜻 생각해도 너무나 행복하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서로의 인생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영화 다음에는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될까.

△장="글쎄요. 더 신박한 이야기를 만들어야죠. 지금도 몇몇 작품이 논의되고 있고요. 정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재밌는 이야기를 관객들한테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영화계가 전체적으로 험난한 시기다. 앞으로 제작자 송은이가 나아갈 방향은.

△송="지금 영화계는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위기에 처한 것 같아요. 비단 한국영화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그렇다 할지라도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기보다는 하고 싶은 얘기를 오히려 무게감 있게 하는 그런 제작자가 되고 싶어요. 상업적으로 잘 되는 문법에 맞춘 작품보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얘기들을 찾아서 전하고 싶어요."

▶영화를 만드는 일이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다시 영화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와 연출 기준은 무엇인가.

△장="굉장히 엄혹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저희 세대는 영화의 사회적 책무를 누구보다 깊이 생각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단지 재미와 자극을 위해 이율배반적인 메시지를 던지지는 말자,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자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지요. 앞으로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형태의 꿈이건 꿈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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