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성의 유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가진 영장류이기에 사유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전제 자체를 부정하진 않으나 결론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인간이 이성을 가진 영장류라는 건 누구나 인정할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사유하고 행동하는 주체라고는 단언하기 어렵다.
악(惡)은 사유하지 않는 육체에서 자라난다. 유대인 학살 주범인 아이히만은 아주 사악한 악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전범재판 참관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실제 그의 지인들은 그가 친절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한 인간이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한나 아렌트가 결론을 내린 것은 '악의 평범성'이다. 누구나 당연하게, 평범하게 여기고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아이히만은 '상관의 명령을 따랐다'고 답했다. 내적인 갈등 없이 관료주의의 효율을 위해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었다.
이처럼 악은 평범하다. 사이코패스나 사회 부적응자만이 저지르는 게 아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사건들이 터져 나온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참사를 '압력절'이라 칭한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압사(壓死)한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표현이었다. '놀러 가서 죽은 거 아니냐'는 식의 폄훼는 이미 수도 없이 접해 익숙할 지경이다. 이러한 분위기로 결국 포털에서는 참사 추모 기간 관련 뉴스 댓글 서비스를 중단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어쩌면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시민이 사유하지 않는 악이라는 방증이었다.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환호한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이다.' 악의 평범성을 표제로 한 이산하 시집의 이 구절은 현 상황을 잘 나타낸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도 늘 선이거나 악일 순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선에 가까워질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시발점은 사유하고 행동하는 데서 출발한다.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 생각할 때, 주위의 악에 관심을 가질 때 또 다른 아이히만의 등장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모욕도 사라지길 바란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악(惡)은 사유하지 않는 육체에서 자라난다. 유대인 학살 주범인 아이히만은 아주 사악한 악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전범재판 참관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실제 그의 지인들은 그가 친절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한 인간이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한나 아렌트가 결론을 내린 것은 '악의 평범성'이다. 누구나 당연하게, 평범하게 여기고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아이히만은 '상관의 명령을 따랐다'고 답했다. 내적인 갈등 없이 관료주의의 효율을 위해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었다.
이처럼 악은 평범하다. 사이코패스나 사회 부적응자만이 저지르는 게 아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사건들이 터져 나온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참사를 '압력절'이라 칭한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압사(壓死)한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표현이었다. '놀러 가서 죽은 거 아니냐'는 식의 폄훼는 이미 수도 없이 접해 익숙할 지경이다. 이러한 분위기로 결국 포털에서는 참사 추모 기간 관련 뉴스 댓글 서비스를 중단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어쩌면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시민이 사유하지 않는 악이라는 방증이었다.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환호한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이다.' 악의 평범성을 표제로 한 이산하 시집의 이 구절은 현 상황을 잘 나타낸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도 늘 선이거나 악일 순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선에 가까워질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시발점은 사유하고 행동하는 데서 출발한다.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 생각할 때, 주위의 악에 관심을 가질 때 또 다른 아이히만의 등장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모욕도 사라지길 바란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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