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보는 창] 쪼그라드는 경제대국, 日 '엔저 역풍'에 소비 감소… 경기 침체 수렁

  • 정민욱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스(일본)
  • |
  • 입력 2024-02-23 08:10  |  수정 2024-02-23 08:14  |  발행일 2024-02-23 제14면
2024020401000110500003991
대구 수성구 대구은행 본점 영업부 행원이 환전을 위해 엔화를 세고 있다. <영남일보 DB>
현재 일본은 수출의 증가와 외국인 여행객의 증가라는 엔(円)저 현상의 장점보다 소비·투자의 감소라는 엔저 현상의 단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은 지난해 상반기 증가를 기록하자마자 3분기에 바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렇듯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로 인한 수입품의 가격 상승, 이로 인한 물가·비용의 상승과 소비·투자의 감소라는 단점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애초에 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한 국가의 경제적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 소비·투자가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엔저로 원자잿값 상승하며 기업투자 감소
연공서열에 젊은층 저임금 개인소비 '뚝'
기시다 총리 경제대책 '성장·분배 호순환'
'젊은층 과감한 금전 지원' 빠져 효과 없어


그렇다면 일본의 경제적 기반을 탄탄하지 않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있는지, 또한 현재 세계 3위인 일본의 경제 규모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 한 번 알아보자.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실질 국내총생산 기준 2023년 3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마이너스 0.5%를 기록하면서 두 분기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이 감소한 배경에는 개인소비의 위축과 기업투자의 부진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선 기업투자가 감소한 원인으로 엔저 현상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상승 등 비용 부담이 꼽힌다. 또 개인소비가 줄어든 데는 공급 감소에 따른 물가 상승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일본 국내총생산의 5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소비 감소다. 개인소비가 감소한 이유는 연령에 따른 임금 격차라는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로 이어지는 일본 노동시장의 문제가 배경에 깔리고 있다.

upd20240204010000399_1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일본의 젊은 층

일본 기업들은 1991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이래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라는 색채가 많이 옅어지고 있다. 하지만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은 일본 기업들 속에서 여전히 관행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종신고용을 하는 일본 기업들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직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 불황과 엔고 현상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으로 일본 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쉽게 가격으로 전가하지 못했고, 비정규직의 증가도 한몫하며 젊은 층의 임금은 오늘날까지도 유난히 낮은 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3월에 발표한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만20~24세 일본인의 월급은 21만 8천500엔(약 191만 원)에 그쳤고, 만25~29세의 월급도 25만 1천200엔(약 22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3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맨션의 가격은 2022년 기준 한 채당 평균 5천121만엔(약 4억 5천만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의 젊은 노동자가 20대 동안 일을 해 번 돈을 모두 저축해도 구매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다.

맞벌이를 통해서 가정을 이루려 해도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로 인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남성은 연령이 올라갈수록 그나마 임금이 올라가지만 여성의 경우 연령이 올라가도 임금의 상승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모두 만55~59세에 가장 높은 월급을 받게 되는데 남성의 경우 월급이 41만 6천500엔(약 364만원)이었던 반면 여성은 28만엔(약 245만원)에 그쳤다. 임금 격차와 함께 직장 내 보이지 않는 연령·성별에 따른 차별까지 고려한다면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진다.

한마디로 노동시장에서의 연령·성별 등에 따른 임금 격차와 차별로 인해 일본은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가 만연한 국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는 자연스레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고 현재까지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upd20240204010000399_2
◆기시다 총리의 대책…아베 전 총리의 복사판?

그렇다면 현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고 있을까. 기시다 총리의 경제 대책의 큰 틀은 '성장과 분배의 호(好)순환'이다. 여기서 분배란 임금의 상승을 말한다. 임금의 상승을 통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상승시키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의 상승을 통해 물가를 적절하게 상승시키고 물가의 적절한 상승을 통해 기업의 실적 강화와 기업의 신규 투자를 끌어내고 이것이 또다시 임금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호순환을 말하는 것이다.

첫 단추인 임금의 상승을 제대로 꿰기 위해 기시다 총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 인상을 단행한 기업에 법인세를 감세해 주는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적자에 시달리는 중소·영세기업도 임금의 인상을 단행할 수 있도록 이월공제조치 등 각종 대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시행하고 있는 경제 대책은 대부분 과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시행했던 대책이다. 아베 전 총리의 경제 대책이 분배는 없고 성장만 있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베 전 총리 집권 2기(2012~2020년) 때의 경제 대책으로는 2013년에 발표한 '3개의 화살(대담한 통화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민간투자를 환기하는 성장전략)'도 있지만 이어 2015년에 발표한 '신 3개의 화살(희망을 만들어내는 강한 경제, 꿈을 잇는 아이 키우기 지원, 안심되는 사회보장)'도 있다.

그리고 '신 3개의 화살'에 이미 '임금의 인상과 수요의 확대를 통한 성장과 분배의 호순환'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임금을 인상하는 방법 또한 임금의 인상에 적극적인 기업에 세액공제를 해 주는 등 기시다 총리와 유사한 방법이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의 경제 대책으로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일본의 경제성장률 반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기시다 총리는 '연공서열의 타파'나 '젊은 층에 대한 과감한 금전적 지원' 등이 빠진 이미 한 번 실패한 경제 대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장뿐만 아니라 분배도 있고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한다는 구호만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출산 대책에 있어서는 저출산 대책 자체가 어디까지나 사후 대책인 측면이 있고, 기시다 총리가 시행 중인 저출산 대책(조건 없는 보육원 입소와 유아 무상교육의 확대 등) 또한 아베 전 총리의 저출산 대책(보육원의 확대와 유아 무상교육의 확대 등)처럼 젊은 층이 출산에 대한 생각을 바꿀 만큼 매력적인 것이 아니기에 저출산 대책을 통한 출산율의 반등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 집권 때처럼 기시다 총리의 집권 때도 경제성장률의 반등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이고 국내총생산의 축소 경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10월 2023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이 독일에 역전돼 세계 4위로 한 계단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2023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전년보다 0.2% 감소한 4조2천308억달러로 예상되지만, 얼마 전에 발표된 2023년 독일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4조5천억달러 수준으로 일본을 웃돌 거라는 것이다.

엔저 현상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일본 국내총생산의 수량 자체가 감소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2010년 중국에 밀려 3위가 된 데 이어, 이제 독일에 밀려 4위가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2026년에는 올해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이 된 인도의 명목 국내총생산이 3위로 오르면서 일본은 5위로 주저앉을 것이라고도 전망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젊은 층의 빈곤으로 일본보다 더욱 극심한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현재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민욱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스(일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