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진행된 가창중 신입생 뮤지컬 캠프에 참여한 1학년 학생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명이 켜지자 '배우'로 변신한 학생들이 등장했다. 긴장과 설렘이 객석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1반은 청춘의 사랑과 성장 과정을 그린 '그리스', 2반은 억압받는 10대들의 외침을 담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란 작품을 선보였다. 격렬한 안무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앙상블을 이어가고, 서로 눈을 맞추며 대사를 주고받는 모습에서 그간의 호흡이 묻어났다. 무엇보다 공연에 임하는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 속에서도 즐거움이 엿보였다.
대구 가창중의 '신입생 뮤지컬 캠프'가 지난 20일 열렸다. 이 캠프는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이 유명 뮤지컬의 주요 장면을 40분 분량으로 각색해 공연으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들은 배역 선정, 대본 리딩, 연기·안무·노래, 장면 구성 등 전 과정에 참여한다.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지만, 하루 5~6시간을 친구들과 모여 연습하기 때문에 새 학교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다. 캠프 마지막 날에 학부모를 초청해 공연을 선보이는데, 공연 후 서로 소감을 나누는 것까지 프로그램의 과정에 포함된다.
그런데 왜 뮤지컬일까.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어른에게도 생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중학교에서 기획한 이유가 궁금했다.
대구 외곽에 위치한 가창중 외관. 가창면에서도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아이들 다시 불러모은 '예술의 힘'
학교가 위치한 가창면은 대구에서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외곽 지역이다. 지리적 악조건 탓에 저출생, 학령인구 감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더군다나 인근에 '수성 학군'이라는 선택지가 있어 이곳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를 수성구로 진학하길 원했다. 2007년 우록초등이 폐교하고, 2010년대 초반엔 가창중도 신입생이 10여명에 불과해 폐교 소문이 돌았다.
이에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가창중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끌어낼 수 있는 교육을 고심했고, '예술을 통한 회복'을 목표로 예술 교육을 확대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기 이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창의성과 협업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뮤지컬'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대구는 또 '대구뮤지컬페스티벌(DIMF)' 등의 예술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기대 효과가 크다고 봤다.
지난 20일 가창중 신입생 뮤지컬 캠프에 참여한 학생·교사들이 공연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학교는 2017년 교육부 인가를 받아 2018년 '뮤지컬 특성화 학교'로 전환됐다. 그해 신입생 정원 40명을 모두 채우고 얼마 안 가 전교생이 120명까지 늘었다. "학교 다니는 게 정말 즐겁다"는 아이들의 호응으로 학부모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확산됐다. 학교는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신입생 경쟁률은 3대 1에 달했는데, 가창면은 물론 수성구, 중구, 북구 등 다른 동네에서도 학생들이 몰렸다.
가창중에 다니는 언니를 보고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는 은수양. 사진은 신입생 뮤지컬 캠프에서 노래하는 모습.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올해 학교에 입학한 차은수(14)양은 "언니가 먼저 가창중에 다니고 있었는데 뮤지컬 공연을 하는 모습이 행복하고 멋있어 보였다"며 "아버지도 자율적인 학교 분위기를 좋아하셔서 한 번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권하셨다"고 말했다. 동급생 전온유(14)군은 "평소 기타 치는 걸 좋아하는데 학교에 기타 수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며 "집(북구 칠곡)이 멀어 처음엔 부모님도 고민하셨는데, 다니고 보니 학교 생활이 정말 즐겁다"고 했다.
온유군은 집에서 학교까지 이동하려면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학교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한국일 가창중 교감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의 니즈와 학교의 교육 방향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며 "전문 예술인을 양성하는 예술 학교라기보다, 특성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학교 적응과 성장을 돕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부터 예술 전공을 목표로 입학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교에서 활동을 경험하며 흥미를 느껴 이후 진로를 예술 분야로 확장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4년 진행된 가창중의 학부모 뮤지컬 공연. <가창중 제공>
◆노래하고 여행하며 사춘기 보내기…학폭 없는 학교의 비결
뮤지컬 특성화 학교인 만큼 전체 수업의 20%를 뮤지컬 특성화 교과로 운영한다. 연기, 무용, 악기, 성악 등을 배운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구상하는 등 뮤지컬 장면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3학년 때는 심화 교육과 함께 창작 뮤지컬을 직접 제작해 무대에 올린다.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유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술 교육 덕분일까. 가창중에는 학교 폭력이 없다고 한다. 뮤지컬 특성화 교과는 고입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고 특기사항으로만 기록된다. 성적 부담이 없어 학생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학부모들이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참여하는 교육 활동을 학부모가 직접 체험하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가진 자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한 교감은 "저희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학교는 가기 싫은 곳이었는데, 가창중은 아이들이 학교 가기를 즐거워한다"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다보니 폭풍 같은 사춘기가 오는 경우가 적다"고 했다.
1학년 김주찬(14)군은 좋아하는 활동을 하니 학업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고 했다.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예전에 피아노를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면접 때 피아노를 쳐서 들어왔는데, 공부도 나름 열심히 하거든요. 예술 활동 하니까 공부할 때 스트레스를 덜 받아요. 친구들과도 끈끈해지고요. 행복해요."
주찬군은 학교의 특성화 교육을 통해 학업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뮤지컬 특성화 학교지만 뮤지컬 활동만 하는 건 아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기를 수 있도록 여러 경험을 하게 돕는다. 대구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가기도 하고, 달성군·달성문화재단 등 지역 기관과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달 2·3학년 학생들은 3박4일간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도보 여행을 떠났다. 동아리도 녹색환경반, 미술반, 사진반, 연기반, 핸드메이드반 등 다양하다.
대구 가창중은 매년 대구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여행하는 체험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가창중 제공>
◆"성인 되어서도 학교 경험 버팀목 될 것"
졸업생 중 약 30% 정도가 예술고로 진학하고, 나머지는 일반계고·특목고·자사고 등으로 진학한다. 입시 성과까지 좋아 학교 정원을 늘려달라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입학을 위해 타지에서 가창으로 이사 오는 경우도 늘었다. 다만 학교 교육에서 예술은 성장을 돕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과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 과정 속에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신입생 뮤지컬 캠프 공연을 감상한 한 학부모는 "코로나 시기를 겪은 아이들이라 다양한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점이 늘 걱정이었다"며 "공연을 보면서 그 걱정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힘든 시기를 마주했을 때 이 경험이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교육, 친구를 이기지 않아도 되는 교육, 스스로를 표현하는 교육, 관계를 배우는 교육, 실패를 통해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교육….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교육이 예술 교육이고, 가창중에서 진행하고 있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아이들의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마중물이 된다. 지역사회에서 뮤지컬 특성화 고등학교 설립에 대한 요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0일 진행된 가창중 신입생 뮤지컬 캠프. 올해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이 5일간의 준비 끝에 40분 분량의 뮤지컬 공연을 선보였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