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人사이드] 국민 건강 위해 힘 쏟는 의성 출신 김나경 아리바이오 부사장 "세계 첫 먹는 치매 치료제 개발 전력…바이오의약품, 韓 새 동력 될 것"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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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4 08:10  |  수정 2024-02-28 08:30  |  발행일 2024-02-14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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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아리바이오 부사장은 2020년 대전식약청장으로 은퇴하기까지 24년간 식약청에서 근무했다. 의약품의 안전성과 규격, 품질 등을 평가하는 업무를 주로 한 그는 모든 인류가 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김나경씨 제공>


김나경 아리바이오 부사장은 국내 의약품 시장의 '안전' 전문가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약대를 졸업하고, 2020년 대전식약청장을 퇴임할 때까지 식약청에서 의약품의 시판허가를 위한 안전성, 규격, 품질을 평가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 재임 중 조직 내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황사 마스크 도입·프로포폴 규제 등 사회적으로 민감하고 파장이 큰 이슈를 직접 처리해 주목받았다. 김 부사장은 "식약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지방대 출신으로 수도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잖은 어려움과 고충이 있었지만, 온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직업적 자긍심으로 살아왔다"고 회고했다.

식약청 재임 중 '혁신의 아이콘'
황사방지마스크 기준 규격 마련
코로나 위기 'KF규격 기초' 토대
프로포폴,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
희귀·난치 질환자 치료 기회 확대

반도체 이을 바이오 산업
세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시장
2026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6.5%
국내 5대 병원·美 등 다국적 임상
치매 치료제 개발의 꿈 이뤄질 것

◆"하루를 살아도 내 인생을 산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철두철미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딸인 김 부사장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돈독한 사이였던 부녀는 김 부사장의 독일 유학을 두고 처음으로 대립했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아버지는 여자 혼자 가는 유학길이 얼마나 고단하고 위험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강력히 반대했다.

"대학에 진학해서 처음엔 열심히 놀았어요. 다른 대학 남학생들과 '문나잇 페스티벌'을 개최했다가 신부님인 총장님께 불려가 한 달 동안 반성문을 썼을 정도였죠. 신나게 놀다가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공부가 너무 재밌었어요. 부모님은 제가 약국을 하고, 시집가서 잘 살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요. 가슴속에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거든요. 결국 '하루를 살아도 내 인생을 산다'는 각오로 독일행을 강행했어요."

고집스럽게 선택한 독일행에서 평생 잊히지 않을 뼈아픈 기억도 있다. 당시 아버지가 독일에 있는 딸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암 재발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전화기를 들고 30분 이상 하염없이 울기만 했어요. 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냥 떠나온 것이 아버지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독일 유학서 배운 '합리주의'

독일 유학 생활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다. 제자에게 한없이 너그럽던 지도교수에게 예기치 않은 병마가 찾아와 결국 10개월 만에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교수가 약속한 연구환경과 혜택도 아득해졌다. 지도교수를 잃고 사고무친 이국땅에서 막막해진 그녀는 조용히 짐을 쌀 결심을 했다. 그때 대학본부에서 학장과 교수들이 찾아왔다. 학교 측은 작고한 지도교수가 약속한 것을 이행하고, 연구 활동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 했다. 학교의 구성원인 지도교수가 타계했을지라도 기관 차원에서 약속을 끝까지 이행하는 것이 그들의 '룰'이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친소 관계를 떠나 모두가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성실히 일한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가 그렇게 해줘야 한다는 독일의 공정성을 인생의 위기에서 체험했다.

"인생이 드라마틱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가 다시 바닥에서 올라가기도 하죠. 마음을 다 내려놓고 있었는데 반전이 찾아온 그때, 저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항상 겸손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하며,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겼어요."

귀국 후 식약청에 취직한 이후에도 당시의 가르침을 꾸준히 이어갔다. 김 부사장은 "저는 직원들을 평가할 때 일을 잘하는 사람을 항상 우선했다"며 "저랑 친하다고 점수를 더 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조직 내에서 제가 가진 라인도 없고, 제 밑으로도 라인이란 게 없다"고 말했다.

◆'황사마스크' 규격 마련, '프로포폴' 위험성 환기

1996년 첫 출근을 한 후 식약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다양한 업무를 맡았지만, 뚜렷한 기준과 규격이 없는 상태에서 우후죽순 난립한 '황사방지마스크'의 기준규격을 마련하고, 국가적 관리방안을 수립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황사방지마스크의 기준규격은 코로나 위기 때 'KF' 규격 마스크의 기초가 되었다. 또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앗아갈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프로포폴의 위험성을 국내에 환기시키고, 오남용 실태를 조사해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관리하도록 한 것도 주요한 성과로 남았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장을 맡아 희귀·난치 질환자 및 암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확대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경감시키기 위한 노력도 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환자 수가 극히 적은 희귀질환의 치료제와 공급이 멈춰선 안 되는 국가 필수의약품의 수급·유통·조제 등을 전담 마크하는 유일한 조직이다. 국가필수의약품은 보건의료상 필수적이나 채산성이 낮아 시장에 맡겼을 때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운 약이다.

"희귀병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고 질환 치명률이 높아 치료제 가격이 고가 내지 초고가인 경우가 많아요. 특히 어린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현행법상으로는 지원 방법이 극히 제한적인 게 현실이에요. 정부와 국회가 희귀·필수약 안정공급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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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먹는 치매 치료제 개발의 꿈

전 세계 바이오 분야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인류가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욕구가 커질수록 신약 개발의 꿈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한국도 신약개발의 중요성을 알고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신약의 특성상 직접적 투자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부사장이 현재 몸 담고 있는 '아리바이오'는 세계 최초로 먹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0년 63억4천만달러(8조3천500억원)에 달하며,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성장률이 6.5%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는 질환 특성상 치료제 개발이 어려워 2003년 이후 신규 승인된 치료제가 없었다. 아리바이오의 치매 치료제 'AR1001'은 현재 국내 5대 병원 등과 함께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 다국적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공익적 임상시험지원대상 1호로 지정되어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포털에서 임상 3상 환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김 부사장은 "지금은 반도체가 한국을 먹여 살리지만 앞으로는 바이오 의약품 분야도 무섭게 성장할 것"이라며 "인류를 위협하는 치매로부터 보다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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