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대에 맞게 변하는 차례 문화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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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5  |  수정 2024-02-15 06:58  |  발행일 2024-02-15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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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기자〈정경부〉

올해 설 명절은 연휴 전부터 부쩍 오른 물가에 차례상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설을 앞두고 농림축산식품부가 밝힌 설 차례상 차림 비용은 평균 30만9천641원.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통시장은 28만3천233원, 대형 유통업체는 33만6천48원이면 차례상을 차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장을 본 주부들은 지난해 예산으론 어림도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특히 과일은 가격표 보기가 무서웠다고 했다. 제수용 사과는 한두 개만 집어도 1만원이 훌쩍 넘었다. 속이 꽉 찬 배는 한 개 7천~8천원선이었다. 비교적 만만한 가격이었던 귤마저도 구매를 주저하게 했다. 올해 제주산 노지 온주밀감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갱신했다. 1년 전 1만원에 샀던 딸기도 올해는 2만원 이상은 줘야 했다.

그간 주부들은 명절 장을 볼 때 차례상에도 올리고 가족들과 나눠 먹을 만큼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했다. 과일은 더 그랬다. 낱개로 사기보단 한 상자씩 사서 쟁여두고 먹었다. 올해는 그럴 수 없었다.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만 샀다. 과일도 낱개로 구매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 가짓수도 확 줄였다.

실제 명절 이후 만난 매천수산시장의 한 상인은 올 명절은 '절망적'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상인은 설을 대비해 제수용 조기를 대량 들여놨는데, 10분의 1 수준만 팔렸다는 것. 그나마 판매된 조기도 제수용 대자 조기가 아니라 반찬용으로 많이 나가는 중간 크기 사이즈였다고 했다. 상인에겐 허탈한 명절임이 분명했다.

그간 사회 곳곳에서 외쳤던 '차례상 간소화'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주부들이 치솟은 물가 앞에 두 손을 들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시대 흐름에 맞게 차례상이 간소화되는 분위기다.

명절 차례 문화뿐만이 아니었다. 제사 문화도 시대에 맞게 변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설을 맞아 경북 안동지역 종가 40개의 제사 방식을 살펴본 결과, 전체적으로 제사 시간대가 앞당겨졌다. 부부의 기제사를 합쳐서 지내는 합사(合祀)까지 등장했다. 조상 제사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가마저도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모습이다.

고물가 장기화와 경기침체로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은 상황에 적당한 선에서 간소하게 차례상을 차리는 것도 현명한 소비생활이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2022년 떡국, 나물, 구이, 김치, 술(잔), 과일 4종 등 9가지 음식만 차례상에 올리자고 제안한 바 있다. 내년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제안한 대로 차례상을 준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이지영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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