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억 칼럼] 방탄의 저주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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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6 07:06  |  수정 2024-02-26 08:09  |  발행일 2024-02-26 제22면
민주당 공천 둘러싼 내홍
'친명횡재' '비명횡사'로
이 대표의 방탄 공천은
민주엔 저주, 국힘엔 축복
선거결과 미칠 영향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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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40여 일 앞둔 제22대 총선 판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큰 표 차로 이기자 당내에서는 '4·10 총선 200석 압승론'이 횡행했다. 반면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100석 붕괴론'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총선에서의 정권 심판론은 더욱 비등했다. 방탄의 틈을 단식으로 메워 구속을 면한 이재명 대표의 당내 리더십은 확고해지는 듯했다. 이 대표의 방탄 성공은 아이러니하게 민주당에 독이 됐다.

방탄의 저주는 이렇게 시작된다. 공천을 둘러싼 민주당 내홍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다. 친명횡재(親明橫財) 비명횡사(非明橫死)는 민주당 공천의 유행어가 됐다. 공천을 두고 탈당과 반발은 일상이 되고 있다. 느닷없는 단식까지 등장했다. 비명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공천을 사천(私薦)으로 받아들인다. 지난해 9월21일 가결된 '이재명 의원 체포 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의 명단은 살생부로 둔갑했다. 당시 민주당 의원 최소 29명은 찬성표를 던졌다. 무효표까지 합하면 39명이 딴마음을 먹은 것이다. 민주당은 국회 표결 얼마 후부터 의원 평가를 시작했다. 최근 알려진 현역 평가 하위 20%로 통보받은 31명 대부분이 이들과 겹친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비밀 투표로 진행됐는데 어떻게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을 찾아냈는지 신기하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후보로 뽑힌 후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의 속뜻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민주당의 이번 공천을 관전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이 대표는 자신의 체포 동의안 가결을 지켜보면서 절대 다수의 의석보다는 어떤 경우에도 체포동의안에 부결 표를 던질 '찐명 의원'들로 짜인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 다짐을 이번 공천 과정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대표는 연초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선 목표로 "최소한 원내 1당을 차지해야 하고, 목표를 높여 잡으면 151석"이라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너무 겸손한 목표치라는 얘기가 많았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참패 이후 국민의힘은 방향을 잃고 우와좌왕하고, 대통령 지지율은 30% 초중반을 오락가락하는 터라 여권의 총선 필패론이 의심받지 않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총선판 분위기는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민주당의 공천을 둘러싼 내홍이 격화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총선 필패론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대표 불출마와 2선 후퇴론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 대표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도 말이다.

만약의 경우지만 이 대표가 구속이 됐었다면 지금 총선 분위기는 어땠을까.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민주당은 친명, 비명을 아우르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극심한 공천 갈등은 없었을 것이고, 정권 심판론은 한층 탄력을 받아 총선 압승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를 정치적 승리인 양 안주하면서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가 돼 있을 것이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비대위원장이 아닌 특정 선거구의 일개 후보가 돼 국민의힘 위기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대표의 방탄은 민주당에는 저주이고, 국민의힘에는 어쩌면 축복이다.

이 대표가 껴입고 있는 방탄 갑옷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자못 궁금해진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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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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