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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정경부 차장 |
얼마 전 일본 여행을 하면서 강한 인상을 받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토리텔링의 힘, 또 하나는 시니어의 경제 활동이다.
나고야 인근에 있는 지브리 파크에서 시작된 감흥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지브리 파크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현실 세계에 구현한 공간이다. 특이한 점은 테마파크지만 놀이기구는 없다. 평면의 작품 세계를 3차원 현실 속 공간으로 끄집어낸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의 수많은 관람객이 이곳을 찾는다. 일본 현지 관람객 수도 엄청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루 밑 아리에티' '천공의 성 라퓨타' '벼랑 위의 포뇨' 등 작품 세계를 재현한 지브리 대창고를 둘러보려면 '오픈 런'이 필수다. 개장 전부터 대기 줄이 똬리를 틀고 입장과 함께 또다시 기다림의 연속이다.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인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1시간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다른 작품 속 공간도 마찬가지다. '귀를 기울이면' '고양이의 보은'을 토대로 꾸민 청춘의 언덕과 '이웃집 토토로' 속 공간을 옮겨놓은 돈도코 숲 등지에서도 관람을 위한 대기는 기본이다. '바람이 분다'에 등장하는 '카스텔라' 빵을 사 먹는 것도 인내가 필요하다.
반면 관람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자신의 '최애' 캐릭터와 사진을 찍고, 작품 속 공간에서 함께한다는 자체만으로 행복감을 얻는다.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뮤직비디오 속 장소가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야기는 감성을 자극한다. 그렇기에 더욱 매혹적이다.
지브리 파크를 둘러보면서 엉뚱하게도 캐릭터가 아닌 직원들의 모습에도 눈길이 자주 갔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공원 곳곳에 배치돼 자신의 업무를 하고 있어서다. 단순히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입장 티켓 확인부터 안내, 상품·음식 판매 등 대면 서비스 전반에서 활동했다. 인원도 적지 않았다. 국내 테마파크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라 더욱 인상 깊었다.
시니어들의 경제 활동은 이곳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여행 내내 발걸음 닿는 곳마다 일하는 노인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 호텔, 편의점, 백화점 등 오히려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더 적었다. 또 다른 테마파크인 유니버설스튜디오 저팬에서도 시니어 직원들은 젊은이들과 함께 다양한 대면 서비스 업무를 담당했다.
물론 이들의 근무 형태는 정확히 모른다.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또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려 자연스럽게 일하는 모습에서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일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하지 않고는 삶 자체를 영위하기 힘들다. 노인의 경우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 정년 이후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한국의 경우 노인 일자리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 소득 빈곤율은 40.4%에 달한다. OECD 평균(14.2%)의 3배에 가까운 수치다. 특히 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40%를 넘긴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내년이면 본격적으로 초고령 국가에 진입한다. 더 이상 노인 일자리 문제를 단순히 정책의 문제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사회가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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