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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
지인들과의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이르게 봉무공원에 도착했다. 더 이르게 와 있던 부부와 여러 곤충 표본이 전시된 나비학습관을 찾았다. 나비학습관은 현장체험하는 학생들이나 올 법한 곳이지만 이순의 나이에도 신기함은 여전하다. 현직에 있을 때 학생들을 인솔해서 여러 번 와 본 곳이라 알은체를 해 가며 둘러보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어린 아기가 들어왔다. 아빠는 아이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걸었다. 아기의 야무진 매무새를 보니 손끝이 야물 듯한 아기의 엄마도 느껴진다. 아빠는 아기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함께 쪼그려 앉기도 하고 번쩍 안아 올리기도 했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나비의 탈피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그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내 손을 남편이 잡아끈다. 참견할 듯한 나를 제지하는 몸짓이다. 하지만 나의 참견은 더 빨랐다.
"아기 아빠, 요 위에 가면 곤충생태원에 나비온실이 있어요.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면 아기가 더 좋아할 것 같아서요."
감사해하는 아기 아빠에게 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고는 약속 장소로 내려왔다. 아기와 아빠가 나비를 두고 써 내려갈 서사를 혼자 상상하며.
필자가 어릴 때 아버지는 꼭 연필 세 자루를 깎아 필통에 넣어주셨다. 심이 길지도 가늘지도 않아서 딱 하루치였다. 나의 학교생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그렇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연필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럴 때면 나도 학생들의 연필을 칼로 직접 깎아주곤 했다.
필자는 아이들이 어릴 때 국토 걷기도 하고 전국의 마라톤대회를 뛰어다녔다. 멀고 가까움의 염두도 없이 여행 가방을 꾸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성년이 된 지금 자주 여행을 즐긴다. 또 마라톤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고 신천에서 연습을 한다. 인근 산을 열심히 오르며 다리 힘을 키우더니 지난해에는 겨울 한라산을 다녀왔다. 얼마 전엔 행글라이더까지… 직장에서는 자기의 일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담쟁이넝쿨이 처음 뿌리를 내리는 곳이 전봇대이면 전봇대가 담쟁이의 길이 된다. 소나무이면 소나무 둥치가 넝쿨이 나아갈 길이 된다.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은 다음에 걸어갈 사람의 길이 된다. 아이들의 일하는 모습이나 여가 생활을 보며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내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한 아이들은 그 과정을 지나면 결국 자신의 길을 만들 것이다.
내가 관심을 보여주었던 그 아기가 훗날 자기 자식 손을 잡고 열심히 나비를 쫓아다니는 아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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