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너나없이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추구하는 바가 불법이거나, 상식에 현저히 반하지만 않는다면 대개 용인되고 그냥 넘어간다. 일면식도 없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라면 대부분의 반응은 그렇다. 그런데 그런 삶의 방식에서 걱정과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저런 간섭과 쓴소리를 쏟아내기 십상이다. 사회적 규범이나 통념에 근거해 잘되라고 하는 소리이긴 하나, 듣는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때로는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알아서 할게" 21세기 대한민국을 관통하고 있는 복잡미묘한 말이다. 불행하게도 알아서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동안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유행했다. '한 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폼나게 살자'는 의지가 함축돼 있다. 어찌보면 과소비가 핵심 중에 하나다. 그런 용기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자기만족의 치트키처럼 빠르게 확산됐다. 프랑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도입한 개념 '파노플리 효과'도 한몫을 했다. 자신의 능력과 처지를 뛰어넘는,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행동은 거의 후폭풍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감당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상당수는 발목이 잡혀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제는 불확실성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취업은 어렵고, 벌이도 시원찮아지면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이들이 급증하면서 '요노'(YONO·You Only Need One)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꼭 필요한 것만 따져 현명한 소비를 하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감정과 감성이 이성과 현실을 지배할 때 플렉스를 즐겼던 행동들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이입돼 있다. 극단적인 '짠소비'가 경쟁처럼 공개되며 반짝 주목을 받았던 '거지방'도 요노의 파생현상으로 해석된다.
욜로든, 요노든 자기 책임이 따르는 삶의 방식이기에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빚과 궁핍이라는 덫에 걸려서도 안되고, 삶의 작은 여유조차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쪼잔하다는 비아냥을 들을 필요도 없다. 분수와 체면을 알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 주는 울림은 예나 지금이나 크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심리적 속성이거나 착각일 뿐이다.
장준영 디지털 논설위원
한동안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유행했다. '한 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폼나게 살자'는 의지가 함축돼 있다. 어찌보면 과소비가 핵심 중에 하나다. 그런 용기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자기만족의 치트키처럼 빠르게 확산됐다. 프랑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도입한 개념 '파노플리 효과'도 한몫을 했다. 자신의 능력과 처지를 뛰어넘는,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행동은 거의 후폭풍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감당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상당수는 발목이 잡혀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제는 불확실성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취업은 어렵고, 벌이도 시원찮아지면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이들이 급증하면서 '요노'(YONO·You Only Need One)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꼭 필요한 것만 따져 현명한 소비를 하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감정과 감성이 이성과 현실을 지배할 때 플렉스를 즐겼던 행동들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이입돼 있다. 극단적인 '짠소비'가 경쟁처럼 공개되며 반짝 주목을 받았던 '거지방'도 요노의 파생현상으로 해석된다.
욜로든, 요노든 자기 책임이 따르는 삶의 방식이기에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빚과 궁핍이라는 덫에 걸려서도 안되고, 삶의 작은 여유조차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쪼잔하다는 비아냥을 들을 필요도 없다. 분수와 체면을 알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 주는 울림은 예나 지금이나 크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심리적 속성이거나 착각일 뿐이다.
장준영 디지털 논설위원

장준영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