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장애·차별·테러에도…"세상 직접 바꾸겠다" 불굴의 여정
가난과 장애, 차별과 낙선, 수사와 테러까지. 정치사에서 그 어떤 지도자보다 험난한 길을 걸어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마침내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안동 산골 출신 소년공에서 출발해 노동변호사,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야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그의 여정은 한국 정치의 가장 극적인 성공 서사로 기록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프레스킷 자료를 통해 이 대통령의 여정을 정리했다.

이재명 대통령 고입검정고시 당시 증명 사진. 더불어민주당 제공
◆ 안동 소년이 절망대신 희망 택한 이유

이재명 대통령 경북 삼계국민학교 졸업장. 더불어민주당 제공
경북 안동 산골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 대통령는 어린 시절 굶주림을 견디며 산나물로 배를 채우던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성남 상대원시장 인근 단칸방으로 이사한 그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3세에 소년공으로 전락했다. 법적 취업 연령을 넘기지 못해 타인의 이름을 빌려 6년간 공장에서 일하며 온몸에 100개가 넘는 상처와 함께 지문·후각의 일부를 잃었다. 프레스기에 눌려 얻은 영구적인 왼팔 장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재명 대통령 과거 가족 사진. 더불어민주당 제공
그는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했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강한 열망'은 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에 진학하고,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만든 동력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계기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변호사'를 결심한 그는 성남에서 철거민, 공단 노동자 등을 위한 법률활동과 시민운동에 전념했다.
그는 1991년, 서울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김혜경씨를 만나 결혼했다. 성남 시민운동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결혼 후 두 아들을 두었다. 김씨는 서울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이 대통령는 장인의 집에서 난생 처음으로 피아노를 보고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간 그는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일부를 형제에게 보탤 정도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강했다.

이재명 대통령 1982년 대학 입학식에 교복을 사 입고 간 모습. 더불어민주당 제공
◆ 성남에서 시민운동 한계 느끼고 정계입문
변호사 등록 후 이 대통령은 다시 성남으로 돌아와 정착한다. 서울 도시정비 사업으로 유입된 철거민과 노동자, 저소득층이 밀집한 성남에서 그는 법률구조와 상담, 시민운동을 병행하며 성남 지역사회와 깊게 뿌리내렸다.
1989년 성남에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그는 성남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 등을 고발했다. 특히 성남시립의료원 설립을 위한 시민운동을 주도하며 지역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4년 성남시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했으나 단 47초 만에 부결됐고, 이재명 변호사는 이에 항의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되는 고초도 겪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직접 바꾸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 1990년대 중후반 인권 변호사 시절 어느 토론회장에서 찍은 사진. 더불어민주당 제공
정치 입문은 시민운동의 한계를 절감한 데서 비롯됐다. 다만 정치 입문 초기에는 실패가 잇따랐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 2008년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지만, 2010년 드디어 성남시장에 당선된다. 그는 재정위기로 위기에 처한 성남시에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뒤 3년 만에 재정 정상화를 달성했다. 이후 '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비' 등 3대 무상복지를 도입하고, 시립의료원 설립도 관철시켰다.
이 대통령는 성남에서의 정치 기반을 바탕으로 2016년 촛불정국의 선봉에 섰고, 2018년 경기도지사로 당선됐다. '기본소득형 지역화폐' '닥터헬기 도입' '계곡 불법정비' 등 상징적 정책들을 잇달아 실행하며 전국적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2000년 분당 부당용도변경 반대집회 참석 당시 이재명 대통령(앞줄 가장 왼쪽). 더불어민주당 제공
◆ 대선 패배 뒤에도 위기 극복하며 당선
2022년 대선에서 0.72%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이 대통령는 같은 해 계양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되며 당 혁신을 이끌었다. '당원 중심 대중정당' 기조 아래 권리당원의 권한을 강화하고, 당원존 설치, 유튜브 중계 확대 등을 통해 당내 소통을 확대했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권 남용'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며, 자신에 대한 총 376회의 압수수색과 5건의 재판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정치탄압에 당당히 맞섰다"고 밝혔다. 2023년에는 단식 농성을 단행했고, 그 과정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2022년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 당시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제공
위기도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1월2일 부산 유세 중 피습당해 경정맥 앞부분이 65% 손상되는 중상을 입었으나 정치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그해 총선에서는 당원 집단지성 기반의 정치개혁으로 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그는 당대표 연임에 성공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대표 연임에 성공한 인물이 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극단을 봉합하고, 실용주의로 민생을 복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보수 인사들과의 대화, 연금개혁 등 초당적 정책에도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이 결과 윤여준 전 장관 등 보수 인사들이 이번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하며 선거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2025년 의원총회 당시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제공
계염사태에서도 주목 받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유튜브 라이브로 시민들에게 국회를 지킬 것을 호소하며 계엄해제결의안 통과를 이끌었다. 이후 주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세계에 알리며 외교적 신뢰 회복에도 주력했다.
블룸버그, CNN, 뉴욕타임스, 아사히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은 이 대통령의 행보에 주목하며 '디킨스적 생애', '실용주의 정치', '촛불의 계승자'로 평가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6·3 대선에서 49.42%를 득표하며 2위 김문수 후보와 압도적 차이로 승리하며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 대통령은 "계엄이 파괴한 민생경제와 무너진 국격, 벼랑 끝 국민의 삶을 복원하겠다"며 "공존과 소통의 정치로 국민 통합을 이루는 것이 시대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