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스물두 살 군인 아들한테 볼뽀뽀를 받았다. 1박2일의 짧은 외박 후 귀대하기 전에 작별 인사 겸 포옹하려는 순간이었다. 보통의 대한민국 아들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엄청 살가운 부자 관계는 아니다. 용돈이 필요한가 싶어 지갑을 여는데 사양한다. 멀리 최전방까지 찾아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란다.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 바쁜 아버지였다. 학교생활은 물론 인생 상담조차 제대로 해준 기억이 없다. 아버지 역할이라고는 졸업식 때 함께 사진 찍는 것이 전부였다. 어릴 적부터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였는데 학교도, 군대도 그렇게 갔다. 조리병으로 힘들게 군 생활하는 것을 알기에 찾아간 것인데, 볼뽀뽀까지 선물하다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울컥한다.
요즘 정치인의 병역 면제가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병명도 애매하고 절차도 이례적이어서 소위 아빠 찬스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 유력한 대선주자가 자식 병역 면제로 두 번이나 꿈이 좌절되었던 나라이다. 병역은 공정과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사유가 없는 한 모든 국민은 헌법 제39조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부담한다.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이라고 되어 있지만, 병역법 제33조는 국민을 나누어 남성은 의무적으로,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군복무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두 아들 모두 군대 보낸 아버지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하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상황을 고려할 때 이를 합리적 차별이라고 보는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병역의무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국회가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가지고 있는데,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능력이 다르다는 점과 비교법적으로도 징병제가 존재하는 70여 개 나라 중 여성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나라는 극히 한정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병역법 제33조 1항이 평등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다만, 병역의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여야 한다. 최근 중동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증명하듯이 인공지능(AI)를 이용한 최첨단 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되고 있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도 고려하여야 한다. 아무리 남북 분단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47만에 이르는 국군은 현대전과 맞지 않다. 첨단 장비로 무장한 소수정예의 적정한 병력으로도 국방은 유지된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장기적으로 출산율의 변화에 따른 병역자원 수급 등 사정을 고려해 양성 징병제의 도입이나 모병제 전환 논의가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진지하게 검토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아직까지 출산과 그로 인한 경력 단절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성 징병제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쉽지 않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 추세, 인공지능 등 전쟁 방식의 변화, 여성을 장교나 부사관으로 한정하는 것을 포함한 양성평등 논란 등의 해결 방안으로 모병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또한, 학업이나 사회생활의 단절을 가져오는 군복무로 인한 불이익이 보상될 수 있도록 가산점 제도를 현실에 맞게 정비하여야 한다.
국방부장관 후보로 문민 출신 안규백 의원이 지명되었다. 국방위원장을 역임할 정도로 오랜 경험과 전문성, 합리적인 성품 및 포용력을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취임 후 내란으로 인한 군내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적인 대북 관계를 위한 국방력 강화 등 과제가 산적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징병제와 군가산점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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