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호주제 폐지 20년, 그 후의 변화

  •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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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30 14:35  |  발행일 2025-06-30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2005년 3월 2일, 대한민국에서 100여 년을 이어오던 호주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에도 큰 논란이 있었다. 가족 질서의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 변화를 보다 냉정히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호주제는 가족 구성원 중 '호주'라는 남성을 중심으로 족보와 가족관계를 규정하는 제도였다.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가족관계로 편입되고, 아이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라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과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비혼모나 재혼가정, 입양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는 제도 밖으로 밀려났다.


폐지 후 2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우선 가족관계 등록부 제도가 도입되어 개인을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기록하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성과 본을 유지할 수 있고, 입양도 투명하게 처리된다. 비혼모의 출생신고 역시 가능해져, 모든 아이가 '가족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가족 형태가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한 부모가정,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재혼가정 등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동등하게 존중받게 된 것이다. 이는 단지 법적 절차만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인식의 지형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제도는 계속 정비되어야 하며,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제도 개혁은 첫 단추다. 그 변화의 출발점이 바로 호주제 폐지였다.


20년 전, 대한민국은 '가족'을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누군가에겐 낯설고 불안한 결정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그 결정을 통해 보다 포용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가족은 혈연이나 족보가 아니라 사랑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호주제 폐지 이후, 법적 제도뿐 아니라 언론과 교육, 문화 콘텐츠도 변화를 맞이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으며, 초·중등 교육과정에서도 '다양한 가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고 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고정된 성 역할과 가부장 중심의 가족관을 넘어서도록 돕는 기반이 된다.


행정 시스템도 점차 개선되었다. 예전에는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임을 증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현재는 전산화된 가족관계 등록부 덕분에 그 절차가 훨씬 간소화되었다. 출생신고, 주민등록, 보험 수급 등 다양한 생활 행정 분야에서 실질적인 편의성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다. 일부 보수적인 시선은 여전히 비혼모, 재혼가정, 입양가정 등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특히 '정상가족'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 가족 구성은 때때로 편견과 불편을 마주한다. 제도의 변화가 완전한 사회적 수용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법과 제도는 변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씩 변해가는 중이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이다. 호주제 폐지가 그 출발점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 정신을 사회 전체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20년 전의 선택은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다양성을 인정한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그 결실이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제는 '누가 호주인가'를 묻는 시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는 가족을 더 이상 한 사람의 소유나 통제의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각자의 인격이 존중받는 관계, 서로 돌보며 책임지는 관계가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다. 호주제 폐지는 그러한 변화의 물꼬였다.


다가올 미래에는 더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할 것이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제도 이전에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다. 20년 전의 용기 있는 결정이 앞으로의 20년도 이끄는 빛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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